간결해지기 (4)
시나브로
처음은 크릴오일 캡슐이었다. 직장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이 높게 나왔다. 의사는 수치가 많이 높지 않고 젊은 나이이니 금연, 금주, 운동, 식습관 개선으로 조절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핑계로 금연 실패, 금주 실패, 운동 안 함, 식습관 개판... 의지박약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내 몸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볼 요량으로 크릴오일 12개월 치를 홈쇼핑에서 샀다.
이 얘기를 듣고 엄마가 자색 양파즙을 보내왔다. 피를 맑게 해 준다고... 그 뒤로는 저용량 아스피린이 혈전용해에 좋다고 해서 복용했다. 한의원에 가서 어혈을 빼기도 하고, 크릴오일이 환경파괴 주범으로 지목되고 오메가-3으로 갈아타기도 했다. 사차인치라는 견과류가 지방산이 풍부해서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사 먹었다.
전부 소용없는 짓이었다. 건강검진하면 매번 혼났다. 어떻게 1년마다 10kg씩 쪄서 오냐고... 담배는 언제 끊을 것이며... 술을 계속 마실 거냐고... 운동은 하고 있는 거냐고... 이쯤에서 의사는 말문을 막고 계속 이러면 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장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담낭에 용종도 생겼다고 했다. 헬스클럽을 끊었다.
몸을 짓다.
헬스클럽을 다니고 얼마 안 돼서 체지방이며 근육량이며 인바디 측정 결과가 금세 정상에 가까워졌다. 처음 상담할 때 이대로 가면 회원님 오래 못 산다며 겁을 주던 트레이너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줬다. 그리고 은근히 보조제를 권했다. 자기는 원래 이런 거 권하는 사람이 아닌데... 라면서...
웃으며 거절했다. 근육 돼지는 징그러워서 싫다고... 대신 비타민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항산화 성분이 들어가 있는 비타민을 젊을 때부터 먹어줘야 된다고... 그래서 종합비타민을 샀다. 추가로 집에서 엄마가 한 포씩 짜 먹는 홍삼진액 스틱을 보내왔다. 면역력을 위한 거라고...
오메가 3, 아스피린에, 비타민 3알, 홍삼까지... 이것만 해도 배부를 정도였다. 어떤 날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는 날도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중복해서 먹은 날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또 술 먹은 다음날이라고 안 먹은 날도 많았을 거고, 한 두 가지 빼먹은 날도 많았을 거다. 한마디로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먹었다.
헬스클럽 PT 6개월을 마치고 원래 생활로 돌아오는 데 1주일도 안 걸렸다. 그리고 몸무게는 몇 달도 안 지나 세 자릿수를 육박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요요구나...' 하지만 이 때는 개선할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팀장을 맡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는 말을 실감하며 될 대로 되라는 막가파가 되었다. 무엇보다 영원히 젊을 줄 알았다.
노화겠지? 백신 탓은 아닐 거야...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아직 이른 나이인데 노안이 왔다고 했다. 지아잔틴인지 나스티아잔틴인지... 하여튼 무슨 잔틴으로 끝나는 영양제를 샀다. 병원에서는 혈행개선제를 처방해 줬다. 그사이 콜라겐과 유산균이 유행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으로 콜라겐과 유산균을 먹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나머지를 먹었다. 건강보조식품과 처방약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1차 접종 후 몸에 이상함을 느꼈다. 오장육부를 찬물에 담가 놓은 듯한 냉기가 몸 안에 가득했다. 접종한 병원에 갔더니 얼른 종합병원에 가라고 했다. 이때까지도 몸에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검사결과 이상 없음 소견을 받았다. 2차 접종 물론 해야 한다고 했다.
2차 접종을 마치고 다시 몸에 이상을 느꼈다. 이번에는 피검사에서 간수치가 정상보다 조금 높게 나왔다. 의사는 정상적인 백신 면역반응일 수 있다며 소화기내과로 보냈다. 백신 부작용과 관계없는 건강검진으로 이미 알고 있던 담낭용종과 콜레스테롤 얘기가 다시 나왔다. 다니던 병원이 있다고 하자 잘 치료하라고 했다.
다니던 병원으로 와서 다시 피검사를 했다. 간수치 정상기준이 40 이하인데 444가 나왔다. 의사는 당장 입원하고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들의 눈빛도 이상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한창 병원에서 더 많이 퍼지던 때라 입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의사는 혹시나 몸에 이상함을 느끼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간장약을 처방해 줬다. 원인불명이기 때문에 일체 운동금지 모든 건강보조식품을 금지시켰다.
사실 의사 앞에서 먹고 있는 건강보조식품을 나열했을 때, 잔소리를 엄청나게 들었다. 미쳤냐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의사는 장담할 순 없지만 무차별적으로 먹은 건강보조식품이 간독성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이어트도 약 먹어서 해결하려고 하는 세태를 꼬집으며, 어떤 병이든 먹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짓자고 했다. 이게 다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고... '음... 그렇지... 어르신들은 양약이 안 들면 한약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처음에 몇 번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왜 자기 말 안 듣냐고 서운해했지만... 음... 음... 음... 간이 안 좋은 걸 어떡해...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몸상태는 나아질 기미는커녕 점점 악화되었다. 자가격리자가 속출하며 업무도 가중되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힘들어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아도, 병이나 노화로 죽는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도 계속 이렇게 살다 가고 싶지 않았다. 생을 스스로 마감한 회사 동기의 소식도 들려왔다. 퇴사를 했다.
퇴사하고 스트레스는 없어졌는데, 뭔가 잘못 먹으면 며칠씩 앓아눕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간 때문에 감기약, 소화제, 해열제, 진통제 같은 기본적인 상비약들도 먹을 수 없었다. 다만 실제로 몸이 아프니까 그 어렵던 금연, 절주, 운동, 식습관 개선이 저절로 됐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앓으면서 먹어도 안 아픈 식단을 찾았다. 복잡하던 건강기능식품 다발을 치우고 대신 그 자리에 샐러드와 통밀식빵 그리고 단백질로 저녁식사를 먹기 시작했다.
샐러드는 상추 5장을 뜯어 넣고, 양파 조금 그리고 토마토 한 개를 썰어 넣는다. 여기에 노란색 파프리카를 1/4조각, 아보카도 반개를 넣고, 올리브유 듬뿍 그리고 통후추 갈아서 조금, 토마토와 궁합이 맞는 소금도 조금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간에서 독소를 배출해 준다는 발효사과식초 한 티스푼으로 마무리한다. 견과류가 있으면 견과류도 조금 넣어준다. 탄수화물은 통밀식빵을 토스트기에서 굽고, 단백질은 닭가슴살이나 참치캔 절반 또는 두부 반모를 넣는다.
아침 사과 한 개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검진수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소식하고 유산균도 챙겨 먹지 않지만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지 않는다. 한 가지 나빠진 점은 풀떼기들을 식빵에 올려서 와그작와그작 씹고 있으면 혀를 자주 씹어 피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붉은 고기가 많이 먹고 싶었는지 혀를 자주 씹었다.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할 때는 몰랐는데, 구강구조가 육식에 많이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앞니와 송곳니를 주로 사용하던 애가 갑자기 어금니를 많이 쓰니 입이 놀랐을 것이다. 아직도 오겹살의 오도독뼈를 씹어대던 추억으로 입을 움직일 때가 많다.
든든한 포만감도, 활기찬 에너지도 없다. 그런데 그게 꼭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