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의 역설

간결해지기 (8)

by 철없는박영감
난 그럴 때 설거지를 해...


그럴 때가 있다. 음... 사실 많다. 머리가 복잡하고 뒤죽박죽 되어 글은 산으로 가고, 애초에 쓰려던 이야기는 빛을 잃어 어딘가로 사라지고, 간혹 심한 날은 망상에 빠져 주제에 맞게 에피소드를 꾸미거나 각색하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얼른 쓰기를 멈춰야 한다. 아니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꾸며서 쓰고 나면 죄책감에 깊은 동굴로 숨어들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그렇게 멈춰야 할 타이밍에 잘 멈추는 것이 글쓰기를 열심히 하면서 획득한 궁극의 스킬이다. 그리고 쿨타임동안은 설거지를 한다. 하얀 거품을 내서 설거지에 집중하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의 미로에서 빠져나와 방향성을 되찾고 망상에서 벗어난 진짜 이야기가 빛을 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집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다면 머리가 가볍고 글이 잘 써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요즘은 집에 찾아오는 사람마다 남자 혼자 사는데 정말 깨끗하다는 칭찬 일색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헤헷) 산책하기, 운동하기, 청소기 돌리기, 빨래하기, 빨래 개기, 이불 털기 등등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설거지만큼 꼬인 머리를 잘 풀어주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상한 핑계 같지만, 일부러 설거지 거리를 쌓아두기도 한다. '나는 지금 머리가 가볍고 글이 잘 써진다'라는 암시를 걸듯이...


징크스, 꼼수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징크스라고 하는 거겠지? 뭔가 복잡한 심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결과적으로 징크스로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나중엔 주객이 전도되어 설거지 거리가 쌓여야 글이 잘 써진다는 강박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꼼수도 마찬가지다. 분명 본래의 의도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이득을 보기 위해 이런저런 꼼수들을 만들어 내고는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거나 제도가 잘못된 탓을 한다.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할지...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시행한 DSR 제도의 비율을 낮추려고 50년 만기로 상환기간을 늘리는 꼼수를 부린다거나, 자사 카드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일정 소액까지 캐시백 퍼센트를 높이자 하나의 결재건을 소액으로 여러 차례 나눠서 결재하는 꼼수를 부린다.


어떻게 보면 참 기발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참 복잡하게도 산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막상 그렇게 꼼수로 챙긴 이득의 액수를 보면... '아... 저 정도 금액이면 부리는 게 맞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징크스로 고생했던 서장훈의 선수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 깊게 공감되기도 한다. 이런 상관없는 의미부여에 인간애적 시선이 계속 쌓이면 미신이 되고, 신앙이 된다.


신앙과 미신은 종이 한 장 차이


시험날 미역국이나 계란을 먹지 않고, 수능철에는 합격기원 엿과 찹쌀떡이 불티나게 팔린다. 임용고시나 공무원 시험 또는 각종 취업 관련 시험, 면접을 치르기 전에는 자신이 믿는... 아니 하느님, 부처님, 알라까지 모든 종교의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된다. 좋은 결과 있게 해달라고... 이것들은 모두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력보다 더 큰 성과를 바라는 마음... 즉,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무속공화국'이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신문, 잡지의 별자리 운세, 띠별 운세뿐만 아니라 결혼 전에... 아니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연인사이에 한 번씩은 궁합을 보러 가고, 손금, 관상, 요즘은 타로점이 인기다. 조금 더 맹신하면 신점을 보러 가서 굿판을 벌이다 패가망신하는 사건도 가끔씩 들려오고, 약한 마음이 극에 달하면 사이비 종교에 까지 빠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요행을 바라는 마음,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잘못된 선민의식... 모두 틀린 선택을 피하기 위함이다. 즉, 실패확률을 줄이겠다는 의도인데... 애초에 전혀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100% 헛수고이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의지의 대상이 필요하다. 무엇에 의지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사항이다.


한 때 매주 로또와 연금복권을 만원씩 샀었다. 이거만 당첨되면 한국을 뜨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일 년이면 52만 원인데, 당첨은 오천 원짜리 몇 번 된 게 전부다. 쓴 돈의 4~5% 정도가 회수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음... 52만 원이면 매년 근사한 겨울 코트를 장만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네...!


적어도 복권에는 의지하지 말자. 돈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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