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대가리부터...

간결해지기 (7)

by 철없는박영감
단풍마저 안 예뻐 보이는 마음


의정부 근처 광릉수목원은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드라이브코스가 아주 좋다. 지난주에 부모님이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이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부모님은 바람을 쐬고 싶어도 관절이 안 좋아서 등산이나 산책을 꺼린다. 그래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 차에 탄 채로 창문만 활짝 열어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울창한 숲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아 눈도 즐겁다.


그런데 역시나 방문객이 많아지면 많은 것이 훼손된다. 우선 노약자들도 산림욕을 즐길 수 있게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조성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용객이 늘어나며 주차장이 모자란 지경에 이르렀다. 주차를 하려는 차량 대기줄이 길어지면서, 이것을 못 기다리는 얌체족들은 좁은 도로 이면에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불법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주차장 대기줄로 막히는 도로에 불법주차된 차량까지 가세해서 장점이던 맑은 공기는 매연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상쾌하고 맑은 공기를 기대했던 부모님은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면서 내내 아쉬워했다. 예전에는 도로 한복판에 백 년 수령은 족히 넘는 큰 나무들이 많았는데, 자동차 통행량이 많아지면서 대부분 말라죽었다. 그리고 추돌 사고도 많이 나서 일부러 잘라내고 작은 나무를 심은 곳도 늘었다.


마음이 지옥


길의 끝에는 봉선사가 있고,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은 차와 사람, 노점들이 한 데 어우러져 난장이 벌어진다. 상쾌한 산림욕을 기대하며 겨우겨우 매연과 교통체증을 뚫고 끝까지 와도 기분전환은커녕 도리어 진이 빠진다. 특히 올 가을은 평균기온이 높다고 하더니 단풍까지 별로 안 예쁘다. 초록이 덜 빠진 채로 그대로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여유로운 산림욕 드라이브를 기대했지만 여기저기서 울리는 경적소리, 눈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주는 하이빔 세례, 무리 지어 다니는 자전거, 사람들 외치는 소리...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 점점 여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끼어들기... 막히는 상황에서 끼어들려는 차에게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는 도로 위는 전쟁터 같았다.


그나마 같은 진행방향으로 억지로 끼어든 차는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비상등을 켜서 '양보해 줘서 고맙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중앙선을 넘어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끼어드는 차는 부딪히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마구 끼어들어 반대방향으로 쌩 사라졌다. 그렇게 몇 번을 사고 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급정거를 하자. 아버지가 한 소리 했다.


"사고 나건 말건, 그냥 무조건 대가리부터 막 들이미는구먼...!"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뒷좌석의 부모님에게도 전염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맑은 공기가 사라졌음을 개탄하는 동시에 매연을 더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차 안에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일단 대가리부터 들이대고 봐!


이제는 20년도 넘은 일이다. 군대 가면서 혹시나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운전면허를 땄다. 기능시험을 통과하고 도로주행을 위해 주말마다 아버지를 옆자리에, 엄마를 뒷자리에 태우고 한적한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우선 아버지가 운전을 시작하고 차가 덜 다니는 곳에서 바꿔서 운전을 했다.


첫 주는 진땀을 뺐다. 시속 60㎞도 폭주족 같이 느껴졌다. 다른 차들은 제한속도 시속 80㎞인 국도에서 150㎞은 가뿐히 넘기는 것 같았다. 옆으로 '뿌아~앙'하고 지나갔다. 운전대가 조금 익숙해지고 같이 달리는 차들과 보조를 맞춰 속도를 내니 차라리 느리게 달리는 차들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운전이 많이 익숙해져서 창을 열고 팔을 올린 채 건방지게 한 손으로 운전도 해보고, 차선 이동도 자유자재로 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보며 주변 차량흐름을 살피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빠져야 하는 길에 긴 줄이 생겨있었다. 원래도 자주 그런 길이라서 미리 끝차선으로 달렸었는데... 그날은 엄마가 말을 거는 바람에 대답을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서행을 하며 끼어들 자리를 살피는데 뒤에 차들이 하이빔에, 경적에 생난리를 쳤다. 다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 걸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안한 듯 손잡이를 꼭 잡고 이렇게 운전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 소리 했다.


"일단 대가리부터 들이밀고 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끼어들고 싶은 욕망과 양보하기 싫은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에서는 승패가 갈리거나, 사고가 나거나, 양보를 해서 넘어가거나 한다. 그런데 이미 결판난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 남는 경우가 있다. 하이빔 공격, 경적 공격, 때로는 창문을 열고 욕을 한 바지 하기도 한다. 시비가 붙어 멱살잡이를 하기도 하고, 최악은 영화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물론 막히는 도로에서 얌체짓은 욕먹고 벌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꼭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보상심리에 더 가깝지 않을까? 누구나 당할 수 있고,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내로남불'의 논리가 지배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무사히 지나간 일은 그냥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겠다고 늘 다짐한다.


그래도 만약 누군가 무리하게 사과를 요구해 오면 비웃지 말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자. 점잖게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꼭 하지 않아도 자연히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쌍방과실'인 경우가 십 중 팔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실이 자신에게 있다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기분을 가둬두지 말고 흘려보내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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