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상대성 (5)
기록의 진화
기록하는 기술은 크게 「벽화 → 회화 → 사진 → 영상」 4단계로 진화했다. 지금은 최종적으로 거의 디지털 기술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3D홀로그램이라던가, 증강현실, 가상현실 같은 방향으로 더 진화할 것 같다.
기록의 기술이 진화할수록 전문성은 낮아지고, 접근성은 높아졌다. 지금은 개인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이 널렸다. 그리고 가짜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같이 진화해서 지금은 '사진 필터'를 뛰어넘어 '딥페이크' 기술이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기록의 가치
기록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안에 기록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벽화는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선사시대 동굴벽화가 그렇고, 유적에서 발견되는 상형문자나 고대문자도 그렇다. 하나의 벽화 속에는 서사가 공들여 담겨 있다. 회화로 넘어와서는 상상을 추가하여 천사나 신화 같은 불멸의 정신을 그리다가 인상주의로 넘어오면서 그 안에 담아내는 시간은 점점 더 줄었다.
기록되는 시간은 점점 줄어... 찰나의 순간을 사진기술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양산되었다. 기록을 하는 이유는 남기고자 하는 마음이 클 텐데 아이러니하게 남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기술이 진화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기록하는 시간이 짧아서 그렇고, 그 안에 기록되는 시간이 짧아서도 그렇다.
짝퉁 기록
기록은 어느새 짝퉁의 수준으로 전락했다. 하나의 '유니크(Unique)'에 수만 가지의 '추종(Follow)'이 따라붙는다. 추억은 복제되어 잠깐 소비되고 사라진다. 수면 위로 뜨게 해주는 육하원칙의 힘을 잃은 추억은 따라 하는 재미만을 추구하다 얕은 곳에서 익사해 버리고 모두가 점프하고, 모두가 그네를 타고, 모두가 매달리다 가라앉아버린다.
그렇게 얼굴이 복제되고, 꿈이 복제되고, 철학도 복제된다. 결국 인생이 줄지어 복제되다 짝퉁만 쌓인다. 서사가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은 기록들은 마치 포르노 같다. 사고와 마주치면 도와주거나 신고하기보다 기록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적극적으로 사고현장을 찾아가 'Show'를 펼치는 X레기들도 있다.
추억(Memory)에 단위가 생겼다. 무엇을 남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