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상대성 (7)
어린 기억의 응어리
어릴 때 몸에 생긴 상처의 흉터는 커가면서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마음에 받은 상처로 생긴 흉터는 희미해질 만하면 잊지 말라는 듯 한 번씩 덧나서 불쑥 불편한 마음을 툭 던져놓고 가곤 했다. 악몽 같았던 첫사랑의 추억이라고 할까... 경험이 쌓이면 웬만한 상처는 '그중 하나 (1/n)'로 별신경 안 쓰게 되기 마련인데... 난생처음 받은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신도시 개발 예정지에 '알박기'로 심어놓은 묘목처럼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쌓인 감정은 계속 남아 있었다. 숨어있지도 않았다. 그냥 원래 자기 자리였다는 듯이 호시탐탐 집어삼킬 기회를 엿보며 태연히 있었다. 그것들은 당당하고 뻔뻔했다. '알박기' 묘목은 시간이 갈수록 깊게 뿌리를 내렸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발작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이젠 시간이 많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기억은 선입선출(先入先出, FIFO)이 안 되나요?
기억은 전혀 관리가 안 되는 엉망진창 창고 같았다. 창고관리의 가장 기본인 선입선출(First In First Out)은 고사하고, 대충 가져다 쌓아놓기만 하고, 적재방식은 뒤죽박죽이어서 구석에 처박혀 있는 상처를 꺼내 치료하려면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해소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겉핥기만 반복되며 기저에 깔린 어린 기억의 응어리는 다져졌다.
어른이 될수록 해소되는 것보다 쌓이는 게 더 많아지며 창고는 포화상태를 넘어 터져 버리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어쩌면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새로운 상처로 덮어 응어리의 폭발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어린 기억은 그랬다.
어린 상처의 늙어버린 흉터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반도는 전쟁의 상처로 얼룩졌다. 1945년 생이면 2023년 현재 78세의 어르신들이다. 지금 주변에 이 정도 연령의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어린 기억의 응어리는 어떨까? 우리가 '꼰대'니, '틀딱'이니 감히 비꼴 수 있을까? 1940년代 금쪽이들은 어떤 상처를 갖고 살았을 것 같은가?
1979년생인 나는 88 서울올림픽, 대전 엑스포, 광주 비엔날레,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어마어마한 국제 행사들을 직접 겪으며 성장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의 열광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역사책에서 글로나 보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980년代 금쪽이들은 '꼰대, 틀딱'이라는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아이에게 부모의 싸움은 전쟁과 같은 정도의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의 정신건강은 온전할 수 없다고... 그래서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절대 하지 말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런데 그런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지금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쟁 발발 소식에 '짓밟히고 있는 아이들은 살아남는다면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갈까?'를 생각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풀릴 리 없는 응어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