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상대성 (8)
쓰는 시간, 걸리는 시간
'시간낭비'라고 하면 시간이 마치 실물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속담도 있으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뭐... 속뜻은 '열심히 살아라, 게으름 피우지 말아라'정도 아닐까? 즉, 노동의 신성시 정도? 노동이 신성한 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어쨌든 현대의 노동은 '무엇을 이루었나'보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리 지키고 있었나'를 더 쳐주는 것 같다. 혹은 상관을 위한 '5분 대기조'...? '욕받이'...?
시간낭비를 시점의 차이 기준으로 봤을 때, 만약 '관찰자 시점'이라면 '네가 쓰는 시간'이 된다. "그 시간 동안 뭐 하고 있었냐? 시간이 남아돌아?"같은 시간낭비를 주장하는 말은 모두 '내'가 아닌 '너'를 탓하는 말이다. '나'를 탓하는 경우라도 거울을 보고 말하듯 '나'를 분리시킨다. 그렇다 시간낭비는 '너' 혹은 '그'와 같은 제삼자에게 적용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과거형이다.
1인칭 시점이라면 '내가 걸리는 시간'이 된다. '쓰다'라는 어감은 없다. "3시간이면 충분하겠는데? 이제 한 시간이면 퇴근이다!"같은 말에는 시간낭비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마감이나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매우 유연하다. 그리고 미래형이다.
거창하게 크로노스, 카이로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간의 신'이다. 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아버지이고, 흐르는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의 신이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 동생이고, 특별한 시간... 즉, 주관적인 시간의 신이다.
크로노스는 농사의 신이기도 하다. 농작물은 시간이 키워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낫을 들고 흰 수염을 기른 남성으로 묘사되고 위에서 말한 '걸리는 시간', 앞으로 올 시간에 중점을 둔 신이다.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인데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것으로 묘사된다. 이미 지나간 기회는 다시 잡을 수 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쓰는 시간', 놓쳐버린 시간에 중점을 둔 신이다.
그래서 시간 관리에 관한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과 카이로스 시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한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전환' 같이 쓰인다. 쉽게 말하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때를 기다려 기회가 오면 잡자' 정도로 풀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열심히 살자...
바쁘고 애쓰는 삶에서 꽉 찬 충실한 삶으로
퇴사를 하면서 하루가 전부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유'를 외치며 널널해진 시간이 마냥 좋았다. 자고 싶은 만큼 자도 되고, 책 보고 싶은 만큼 책 봐도 되고, 밥 먹고 싶으면 밥 먹고, 청소하고 싶으면 청소하고, 씻고 싶으면 씻고... 그리고 시간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탕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바쁘지 않으면 불안하던 일상은 점점 여유로워지며 나에게 충실해지는 시간으로 변했다. "해봤어? 까라며 까! 안되면 되게 해야지!"라며 애쓰는 삶을 강요하고, 강요당했는데... 이제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오는 것을 막지 않고 흘려보내니 마음속에 드는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 생기면서 내면이 더 꽉 차게 되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욕심이 줄어 여유가 생긴다. 가진 것은 없지만 훨씬 행복하다. 환경을 무소유하니 마음을 'Full'소유하게 되었다. 지금은 돈 벌고 모아서, 부자 되고 성공하겠다며 바쁘게 애쓰며 살았던 그때가 진짜 시간낭비였던 것 같다. 예전 신문에서 본 '장석주 시인'의 칼럼의 제목으로 글을 마친다.
『시간 없음은 나쁜 삶의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