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요!

시간의 상대성 (9)

by 철없는박영감
자숙의 시간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은 자숙(自肅)과 성찰(省察)의 시간을 갖겠다며 잠시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곤 한다. 자신을 한 껏 낮춰, 스스로 조심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잊히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최대한 빨리 잊히려면 얼른 논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납작 엎드려 피하는 방법이 최상책이다.


자숙기간은 논란이 많다. 10년 넘게 자숙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사고 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복귀준비 소식을 알려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죄를 앞으로 묻지 않고, 지금까지 혼자 받아온 벌을 앞으로 같이 안고 가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유명인사들이 자숙의 기간을 끝내도 되는 시기는, 실망으로 등 돌렸던 팬들이 앞으로 같이 벌 받으며 같이 늙어가겠다는 각오가 섰을 때이다.


말이 자숙이지 절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말발들이 너무 좋아서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홀리는 그런 경우가 많다. 손바닥 뒤집듯이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분들을 보면 '참 돈이 무섭다'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때의 나는 미안해요. 지금은 아니에요.


한참 학력위조 논란으로 시끄러웠을 때, 한 유명 전문강연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고, 거의 모든 강연도 취소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강제추방됐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 길이 막막해져서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버텨내 다시 스타 강사의 자리로 돌아와 방송에도 나오고 유튜X 구독자수도 어마어마한 것 같다.


책을 냈는지 강연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래 계속 봐오던 프로그램이라서 그날도 방송시간에 맞춰 시청을 하고 있는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채널을 돌려버렸다. 우선 처음은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시작됐다. 어려웠던 이야기를 쭉 하면서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을 자기가 먹여 살려야 된다면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볼모 잡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예전에 제 강의 들으신 분들께는 미안해요. 그땐 내가 틀렸어요. 지금은 아니에요"라는 멘트가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 자숙기간을 갖고 복귀에 성공한 인사들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중의 질타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아마 비슷한 의도로 방송을 통해 그런 멘트를 흘려보낸 것 같은데... 인정한다는 느낌보다 '왠지 저 사람 10년 뒤에도 어딘가에서 똑같은 소리 하고 있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었다.


허망한 시간


20代후반 30代초반에 처음 들었던 그 강사의 강연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생각을 했으며, 또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40代가 되었는데... 그 강사는 전국적인 방송에 나와서 한마디로 손바닥을 뒤집어 버렸다. "I'm Sorry"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허망해졌다. 그리고 '미안할 소리를 왜 해?'라는 생각이 들며 채널을 돌렸다. '아~ 돈이 무섭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같이 벌 받는구나. 그동안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었는지 몰랐는데... 철없는박영감이 된 이유가 저거였구나'. 정말 눈물 나게 허망해졌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그 강사가 방송에 나와서 또 "I'm Sorry" 안 하란 보장이 없다.


그 뒤로 강연은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특히 전문강사의 강연은... 힐링을 주제로 한 그들의 강연내용은 자신의 에피소드와 아포리즘을 그럴싸하게 끼워 맞춰 포장해 놓은 것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지식은 많은데 그것을 꿰뚫는 지혜와 통찰은 부족했다. 요리조리 구슬이란 구슬은 모두 꿰어 놓은 촌스러운 목걸이 같은 요사스러운 스타일만 있었다. 그런 걸 자랑스럽게 걸고 늙어가며 생기는 목주름을 감추고 있었다.


That's "NOT" all righ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간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