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 나는 낡은 속옷

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2)

by 철없는박영감
아빠, 우리 집 부자야?


온 가족이 한 방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던 시절... 요즘이야 편리하고 저렴한 난방시설이 많고, 새시가 좋아서 단열도 잘되지만, 초중고등학교를 보냈던 웃풍 돌던 옛날 단독주택은 기름보일러를 땠었다. 그래도 연탄보일러 대신 놓은 최신형 기름보일러는 방 안에서 온도조절이 가능하고 수도꼭지에서 온수가 나오는 신세계를 선사해 줬다.


아파트에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문명의 충돌'級 충격이었다. 하지만 역시 기름보일러는 유지비가 비쌌다. 그래서 연탄난로를 설치하고 안방만 보일러를 틀어, 온 가족이 한 방에서 먹고 자면서 겨울을 났었다. '드드드득' 돌려가며 채널을 바꿔야 하는 리모컨 없는 14인치 브라운관 TV 앞에 이불을 함께 덮고 누워 주말이면 '유머 1번지'를 보며 둘러앉아 뻥튀기를 먹었다.


당시 TV 에는 못 먹고, 못살던(지금 보면 나 어렸을 때가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이겠지?ㅋㅋㅋ) 부모님 세대가 어렸던 시절의 전쟁고아, 거지, 소년소녀가장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으레 부모님은 이런 넋두리를 하셨다.


"참! 우리 많이 부자 됐다..."


'부자'소리에 나와 동생은 눈을 반짝이며,


"아빠! 우리 부자야?"라고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장난으로 대답하셨다.


"그럼 우리 집 부~자집이지! 삼부자집..."


"우와! 우리 집 부잣집 맞구나... 우와~"


그땐 몰랐지...


그 '부자'의 뜻을 잘 몰랐던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대답에 신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부잣집처럼 보이는 것은 자랑거리였다. 뭔지 몰라도 '부자'소리를 들으면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에 같이 학교 가자고 집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우리 집 아침 밥상을 보고는 '얘네 집 부자야. 잘 살아...'라고 증언도 해줬다.


그렇게 우리 집이 부잣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어떤 이유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부족함을 더 모르고 살았다. 날마다 아침 밥상에는 고기반찬이 올라왔고, 도시락에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동그랑땡, 스모크햄, 꼬마돈가스, 비엔나소시지, 참치캔이 있었다. (계란프라이 도시락 밑에 까는 세대까지는 아닙니다. ^^;;;) 그래서 우리 형제는 어디 가서 촌티 난다는 말보다 귀티 난다는 말을 더 듣고 자랐다.


분홍소시지는 취급도 하지 않았다. 요즘이야 별미라며 계란옷 입혀서 맛있게 부쳐먹지만, 그때는 밀가루에 색소까지 들어갔다고 해서 크게 대접받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 먹일 햄은 절대 싸구려로 사지 않았다. 철저히 돈육 함유량을 보고 골라서 반찬을 해주셨다. 그런데 한 번씩 엄마가 도시락에 싸주는 동그랑땡이 되게 맛없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자기가 요리에 소질이 없어서 그렇다고 미안하다며 본인 탓을 했다.


이제는 알지...


왜 한 번씩 동그랑땡이 맛이 없을 수밖에 없었는지... 오늘 두 분의 빨래를 널다가 알았다. 자신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아끼고 아껴도 도저히 돈 나올 곳이 없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동그랑땡 반죽에 밀가루와 물을 섞다 보니 맛이 없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맛없다고 투정하는 자식들 기 죽이지 않으려고 본인 탓을 했다는 것을... 자신은 구멍 난 속옷을 입을지언정 자식들에게는 최고급 옷만 입히셨다는 것을...


요즘은 백수로 지내는 탓에 집안 살림을 조금씩 맡아서 하고 있다. 부모님 댁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널면서 다시 두 분의 속옷을 봤다. 두 분의 속옷은 여전히 낡아있었다. 사춘기 때, 왜 짝도 안 맞는 양말을 안 버리고, 왜 다 떨어진 속옷을 그냥 입냐고... 집에 돈이 없냐고, 궁상 좀 떨지 말라고 독설을 내뿜었던 그때의 입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 대 때렸다. 그리고 건조된 빨래를 귀티 나도록 정성을 다해 개어놓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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