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3)
지구 종말의 예언
"이러다 곧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서 지구가 멸망할 거야..."
엄마는 뉴스에서 전쟁소식과 세계정세를 보면서 마치 예언자라도 된 듯이 탄식을 한다. 하지만 엄마의 3차 대전 타령은 아기 때부터 40년 넘게 들어온 레퍼토리다. 어릴 때는 분위기가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지만, 지금은 '눼~눼~ 어련하시겠어요...'라는 식으로 콧방귀만 뀐다. 그렇게 사이비 교주 취급을 당하고 나면,
"어디 내 말이 틀리나 두고 봐라..."라며 40년간 엄포를 놓고 있다.
기억할 수 없는 갓난아기 때, 요즘 한창 관객몰이 중인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이 되는 10.26이 터졌고 곧이어 12.12까지 발발했다. 그때는 신혼살림에 TV도 없었고... 라디오와 말로만 전해 듣는,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공포 분위기 조성에 덜덜 떨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등에 업혀 있는 갓난쟁이가 너무 불쌍해서 하루종일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랬던 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구 멸망'을 논하는 수준이 됐으니... 아~ 옛날이여~!
"12월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곧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멸망할 거야..."
엄마의 종말 예언은 TV에 나오는 모든 위기 경고 뉴스로 확대되었다. 엘리뇨, 라니냐, 대기오염,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 쓰나미, 지진 같은 자연재해, 이상고온, 이상저온, 빙하면적 감소, 플라스틱 쓰레기 등등...
첫눈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일 때,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엄마는 우리 형제를 데리고 경양식집에 갔다. 첫눈을 축하하러... 따뜻하고 고소한 수프에, 달짝지근한 단짠 소스가 뿌려진 바삭바삭한 돈가스, 처음 먹어 본 마카로니, 마지막 후식으로 오렌지 주스까지... 밥과 반찬을 한상에 펼쳐놓고 왁자지껄 먹던 분위기와, 조금 어두컴컴하고 프라이빗한 장소에 순서대로 나오는 요리에 칼질하는 분위기는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다.
정말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으며, 하늘에서 계속 내리는 솜털 같은 첫눈을 맞으며 엄마와 우리 형제는 그렇게 매년 첫눈이 오는 날이면 경양식집을 찾아 분위기를 냈다. 아마 지금 글을 쓰는 나의 감수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억척으로 덮인 소녀 감성
'TV쇼 진품명품'을 보다가 작은 도자기들이 출품되어 몇 천만 원씩 감정가를 받는 것을 보고는,
"어릴 때, 우리 집에도 저런 도자기 많았는데... 내가 꽃꽂이한다고 깨 먹지만 않았어도..."
사실 외갓집에 저런 도자기가 많았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꽃꽂이를?'이라는 포인트에서 더 화들짝 놀랐다. 엄마는 생화 선물을 극도로 싫어한다. 특히 얼마 주고 샀냐라고 물어올 때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5만 원짜리를 3만 원짜리라고 거짓말해 보지만, 엄마에게는 3만 원, 5만 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그걸 돈 주고 샀다는 게 분노의 핵심이다.
"아니... 난 그냥 꽃이 예뻐서... 엄마한테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분명히 '말'인데... 변명하는 말의 폰트가 점점 작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점점 자신 없어지며 말끝이 흐려진다. 그러면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다시는 이런 거 사 오지 말라고 하면서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나도 같이 멋쩍은 표정이 된다.
"아들, 고마워~!"
치~ 좋아할 거면서... 오다 주웠다고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