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4)
철없는박영감
필명을 어떻게 이렇게 잘 지어놨는지... '철없는박영감'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그때 그 시절의 누나들에게 고마울 정도다. 예전 글에서도 한번 밝혔는데... 인생 2막의 목표로 삼았던 '성우'를 꿈꾸며 다녔던 학원에서 만난 누나들이 지어준 별명이 지금의 필명이다. 금수저도 아니면서 금수저 같은 사고를 가졌던... 영감은 아니었고, 단지 철없던 시절의 '나'를 돌아본다. 일명 '등골브레이커' 연대기!
일이 잘 안 풀리면 남탓하기 쉬워진다. 누구의 탓도 아닌데, 내 탓이 아니니까 남 탓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연대기는 '이것만 있으면 돼 → 이것 정도는 가져도 돼 → 이것도 없이 어떻게 살아 → 이게 없어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야'같은 '남 탓'의 성장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다.
기억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VTR'이다. 비디오 테이프하면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른다고 하겠지만, 어릴 때... 음...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비디오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요즘이야 파일도 넘어서서 스트리밍으로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원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공중파 저녁방송시간대에 편성된 어린이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것과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TV 옆에 모셔놨던 VTR
비디오테이프로 영상을 보려면 VTR (Video Tape Recorder)라는 플레이어가 필요했다. 1986년에는 TV는 많이 보급됐지만, VTR은 대중화가 안 됐던 시기다. 그때 집에 VTR이 있다고 하면 좀 사는 집이었다. 초등(국민) 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유치원보다 더 넓은 세상이 펼쳐졌다. 동네에 아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서 이 집, 저 집 많이 놀러 다녔다. 단연 최고 인기집은 VTR이 있는 집이었다.
자동차 공업사를 하는 집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도 까먹지 않는다. '정희 O'. 친구들 중에 그 집에만 유일하게 VTR이 있었다. 좀 '오냐오냐'하면서 자란 탓인지... VTR 하나 가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횡포를 심하게 부렸다. 하루는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줬는데, 그 친구 집에 VTR 보러 갔다가 자랑을 하게 됐다. 같이 타면서 신나게 놀았는데, VTR을 보려면 자전거를 놓고 가야 한다는 말에 안된다고 했다가 쫓겨났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아버지가 화가 단단히 나셨다. 바로 다음날 우리 집에 VTR이 생겼다. 거의 몇 달 치 생활비가 들어가는 돈이었는데... 아버지도 엄마도 화가 많이 나셨나 보다. 집에 VTR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테이프를 대여해야 하는데, VTR 사는데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결국은 얼마간 집에 모셔놓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설명서를 세심히 읽더니 공테이프에 녹화하는 법을 터득해서 만세를 불렀다.
따져서 뭐 할 거야?
아마도 지금의 금수저 같은 사고방식은 이때부터 뿌리내리지 않았나 싶다. 우리 집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 가서 따지지 않았다. '따져서 뭐 할 거야?'가 두 분의 공통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엄마는 '네 탓, 내 탓 따져서 뭐 할 거야? 그냥 내가 잘나면 되지, 아니면 안 하고 말지...'같은 사고방식이었고, 아버지는 '네 탓, 내 탓 따져야 할 건 따지는데, 꼭 따져야 할 것만 따지고, 끝까지 따질 거 아니면 시작을 하지 마...'였다.
만약 그 친구의 심술에 대해서 그때 부모들끼리 따졌다면,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고... 큰 싸움으로 번졌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아버지는 학교를 자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요즘이면 '교권침해' 뉴스감이었을 거다. 그 친구가 선생님께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건지, 어쩐 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친구 아버지는 학교로 찾아올 때마다 학교전체가 떠나가라 선생님께 상욕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어쩌면 그 집의 악명이 이미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있어서 부모님이 상종을 안 했던 것일 수도... 어쨌든 VTR이 생긴 나만 좋은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