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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

말이야 방귀야 (7)

by 철없는박영감
결혼


"왜 결혼을 안 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니? 난 우리 아들 믿어!"


대략 한 10년 전쯤... 30대 중후반일 때, 엄마가 결혼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무수히도 했던 말이다. 결혼선배, 인생선배, 그리고 나를 낳아주신 분의 말씀이기에 무슨 의도인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표현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안 하고, 안 후회할 건데요..."


"됐끄등 요...!"


대화는 항상 이렇게 끝났고, 이 장면은 시간과 배경만 바뀌어가며 무한 재생됐다. 수십 년 같은 연극무대에 서는 배테랑 연기자라도 된 마냥, 나중에는 왜 결혼 안 하냐는 소리가 나오면 눈으로 대화를 했다. 그러면 중간생략하고 바로 마지막 대사가 나왔다.


'왜 결혼 안 하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됐다. 결혼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니 100%가 결혼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결혼하면 후회한다는 말은 100% 신뢰한다. 왜냐면 난 안 해봤는데, 해본 사람들 말이니까... 그런데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은 신뢰할 수 없다. '~카더라' 통신級 거짓말이다. '이대로 나 혼자만 죽을 수 없어 같이 죽자'라는 물귀신級 억지다.


정작 미혼인 분들은 결혼하라는 말... 잘 안 한다.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대부분 기혼자와 어르신들이 매도하는 수준이라서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권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화두를 꺼내지 않는다. 지금 내가 그러니까... 후회할지 안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닌데...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건데... 왜 인생에 정답이 있는다는 생각을 강요하지?


퇴사


어딘가로 첫 발을 내딛으려고 하면 레퍼토리 같은 대사를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안 하면 서운할 정도로... 좋은 쪽으로는 대학 입학했을 때 '불행 끝! 행복 시작!'같은 것이 그렇고, 나쁜 쪽으로는 '나도 다 해봤어'정도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퇴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하면 꼭 어디선가 이런 말을 꼭 한다.


"야! 회사 안이 전쟁터면, 나가면 지옥이야! 어디 가나 다 똑같아... 그냥 붙어 있어!"


분명히 어딘가에서 들었거나, 드라마에서 본 이야기일 텐데... 마치 자신이 퇴사를 해본 마냥 이야기한다. 물론 퇴사를 해본 사람일 수도 있다. 퇴사라기보다는 이직이 더 맞겠지... 퇴사의 의미가 꼭 이직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은퇴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고, 꿈을 좇아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철딱서니 없지만... 어쨌든 회사 안이건 밖이건 자유가 없는 세상은 모두 지옥이었기에 또다시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다.


퇴사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지옥에 살만 하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아직 살아있는데요'다. 후회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후회라기보다는 추억에 젖듯이 아주 가끔 생각날 때가 있지요. 행복과 후회가 같은 뜻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항상 故정주영 회장에 빙의한 듯 '해봤어?'를 외치던 상사들은 퇴사만큼은 하지 말라며 회유한다. 퇴사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걱정 말고 나오라고 한다. 지옥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얼마나 성공하고, 잘되는지 두고 보자는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까 걱정하고, 돈 없고, 능력 없고, 가진 것 없는 처량한 삶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2년 지나고 보니 나만 신경 쓰는 것이다. 퇴사한 후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나가서 망했기를 바라는 기대는 질투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기들만 지옥에 남겨두고 떠난 배신감?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는데, 떨어질 염려 말고 높일 생각을 했었어야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하나가 있다. 바로 '설득'이다. 결혼하라고 설득하고, 퇴사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화면에 바로 '후회 이론'이 뜬다.

후회이론은 이론경제학분야의 이론으로서 불확실성 상황하에서 결정을 할 때, 최선의 행동 방침에 대한 정보가 향후 결정을 변경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심리적 후회가 경제적 효용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과 논리를 수리적으로 증명한 이론이다.

[출처 : 위키백과 "후회이론"]

말이 좀 어렵다. 다른 검색 결과를 보면 좀 쉽게 알 수 있다.

서점에 가면『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오츠 슈이치 지음) 유형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그중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를 낳았고 어떤 결정은 나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나쁜 결과를 낳게 되면 사람들은 후회를 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후회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회 이론(regret theory)은 후회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후회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후회하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하려는 학문적 체계다.

후회 이론은 철학,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지만 설득에 대한 저항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심리학 분야의 반(反) 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 관련 연구다. 반사실적 사고 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건들이 독립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만일∼했더라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등의 대안적 결과와 비교함으로써 평가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특히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상상에 의해 구성된 ‘혹시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사건’과 비교한 결과 발생하는 후회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후회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한다고 한다. 첫째는 어떤 결정이 최상의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고려이고, 둘째는 만일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에 대한, 예상되는 후회에 대한 고려다. 만일 자신의 현재 결정이 잘못된다면 미래에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상황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외부의 설득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 반사실적 사고 관련 연구의 주장이다. 후회와 저항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중 처리 과정 모델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후회 이론" (오메가설득이론, 2014. 4. 15., 이현우)


결국엔 '이거 안 하면(혹은 하면) 엄청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겁줘서 사람을 설득하려 말이었다. 아마도 이 말뿐만 아니라, 다른 '조력자'를 자처하며 건넨 말들에 거부감이 들게 하고, 동의할 수 없게 만든 정체는 '겁주는...'이라는 숨어있는 위화감이지 않았을까? 40년을 넘게 모범생처럼 순응하며 살아오면서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알 수 없는 '반항심'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겉은 순둥순둥한데 속은 반골기질로 가득 차 있는 모순 덩어리가 나뿐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좋은 말로 청개구리들... 후회하는 像의 대표주자...


이중 처리 과정 모델

당신이 자동차 구매와 관련해서 대안 A와 대안 B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대안 A를 꼭 구매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대안 B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심리적 반발 이론의 주장이다. 실제로 심리적 반발 이론 관련 연구들은 그러한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중 처리 과정 모델(dual processes model)은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압력은 이처럼 심리적 반발이라는 즉각적인, 그리고 거의 자동화한 과정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되는 후회에 대한 고려는 보다 이차적이고 통제적인 과정에 의해 진행된다.

반사실적 사고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외부의 설득 시도를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미래의 후회를 사전에 미리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설계에 의해 자신의 현재 결정이 미래에 어떠한 후회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기회를 부여받은 피실험자들은 대체로 외부의 설득 시도를 수용하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설득을 거부한 결정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 사람들은 설득을 수용한 결정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보다 훨씬 많은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이중 처리 과정 모델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사람들의 의사결정 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설득 시도는 분명 일차적으로 심리적 반발이라는 자동적인 반응을 낳게 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에 따른 미래의 후회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만들면 심리적 반발이라는 저항은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보험 회사 영업 사원들은 잠재 고객들에게 보험을 판매할 때 만일 그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사망해서 그들의 가족이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얼마나 후회가 많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넌지시 권유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후회 이론" (오메가설득이론, 2014. 4. 15., 이현우)


그런데 정말 인생은 후회할 수밖에 없고, 후회는 나쁜 게 맞아? 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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