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말이야 방귀야 (8)

by 철없는박영감
충격


'세상에 뭐 이런 말이 다 있냐?'. 충격이었다. 성우를 준비하며 연기공부랍시고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많이 보고 다녔는데, 그중에 막장인생 스토리라며 같은 학원 누나가 추천해 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란 영화에 나온 말이다. 배경화면은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보는 듯 밝은 색감으로 채색돼 있었고, 등장인물은 '윌리 웡카'와 '움파룸파족'을 보는 듯 춤과 노래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소름 끼쳤다.


너무나 충격적인 워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우울증이 시작됐다. 아니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처럼, 우울증이 먼저였는지, 이 말이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우울, 자살충동의 심정을 너무나 잘 대변해 주는 말이었다. 점점 글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카톡 프로필에 띄워놓았다. 살려달라는 마지막 끈을 드리워놓았던 것 같다. 내 입으로 말 못 하겠으니, 누가 좀 제발 알아차리라고...


공들여 준비한 성우공채시험에 어이없는 이유로 응시도 안 하고, 회사숙소로 돌아와 주말 내내 울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햇살은 따뜻했다. 아파트 9층, 이대로 밖으로 뛰어내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이상의 '날개'속 주인공이 될 것 같았다. 날고 싶었다. 건물이 바람에 조금만 흔들려도 금방 알아채고 공포에 휩싸이던 사람이 베란다로 나갔다. 그리고 죽는 것보단 연(緣)을 끊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쉬운 선택


어릴 때, 매 맞은 원인의 7할은 동생 때문이었다. 엄마는 형이 돼서 동생관리도 못한다고 연대책임을 물었다. 큰엄마는 동생이 말 안 들으면 제대로 한 번 날 잡아 먼지 나게 패주라고도 했다. 고작 2살 터울인 형제라서 같은 어린아이였는데, 영문도 모른 채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매타작이 대물림 됐다.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잘못됐을 때, 소모적인 책임 논쟁 보다 '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빨리 덮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덤터기를 쓰고, 빨리 떨쳐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하수였다. 그야말로 미봉책... 가장 쉬운 선택이었고,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를 몰아세웠고, 남들도 힘들게 했다. 상사들은 좋아했다.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며 칭찬했고, 더 잘하라고 부추겼다. 인정받는 느낌... 그 달콤함에 취해 나를 잃었다. 여기서 푸드닥, 저기서 푸드닥 쌈닭이 되어갔다. 쌈닭의 운명이라고 해봐야 최고가 되어도 끝이 어떨지 뻔한데, 그것도 모르고...


'제 잘못입니다'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가 되었다. 자기혐오는 밤이 되면 더 괴로워졌다. '쓰미마셍'을 되뇌다 보면 아침이 되었다. 병원을 찾았다. 잘 수 있게 해 주는 약을 몇 달간 썼다. 약은 제 효능의 일부만 발휘한 채, 환상을 같이 보여주었다. 대가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큰 뱀이 몸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비늘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약이라는 쉬운 선택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약을 조절하고, 상담을 길게 했다. 어느 날, 아마도 마지막 병원 간 날, 의사 선생님은 'OO님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 말에 새롭게 태어났다. 더 이상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죄송해하지 않아도 됐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바람은 '이제 너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며 죄를 사해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못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힘들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드디어 제대로 사과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영화에서 봤던 이 말은, 자신이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고 믿는 영화 속 작가 캐릭터가 기차에 투신하기 전에 원고지에 히라가나로 정갈하게 써놓은 유서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영화 때문인지... 이 말을 검색해 보면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가 남긴 유서라고 검색되는 결과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소설 쓰기가 싫어져 죽는다'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이 말에 푹 빠져있을 때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말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읽다가 소설 속에서 이 말을 발견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소설 속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없었다. 해소되지 않은 욕구로 남아, 그 뒤로 간간히 검색을 해봐도 앞서 말 한 잘못된 영화장면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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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전에 드디어 발견했다. 2012년에 나온 내용인데, 10년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이 말은 '다자이 오사무'의 '이십세기 기수'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라고 한다. '역시 그 작가의 말이 맞기는 했구나...'. '인간 실격'도 첫 문장이 꽤 인상 깊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이제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젊음의 고뇌'에서 해방되었다. 한없이 나약했고, 한없이 부끄러웠던 날들에서 탈출했다. 지금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같이 느껴지며 웃지만, 존재의 이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그때는 무엇보다 심각했고, 치명적인 고뇌였다. 나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잘 헤쳐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생애, 그런 고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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