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자의 엄마 (제9화)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by 철없는박영감
제9화


『[서울경찰청] OO구에서 배회중인 서양년 씨 (여, 71세)를 찾습니다. 160cm, 53kg, 분홍색 등산복, 회색하의, 단발머리 vo.la/OOOOO/☎182』


올해도 어김없이 2월 1일이 찾아왔고, 그녀는 사라졌다. 안전안내문자가 발송된 것은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몇 시간 지난 후였다. 이번엔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헤매고 올까...? 매년 연례행사 같은 이 사달을 올해는 꼭 막아보려고 거실에서 지키고 있었지만, 식사 준비까지 해놓은 멀쩡한 모습에 잠깐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엔 외투도, 신발도 챙겨서 사라졌다.


양연이 처음 사라진 날, 세영은 제설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치워도 치워도 돌아서면 원상 복구되는 길과 마주하기를 수차례... 폭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기계처럼 눈을 치우다 '쌓이고 나서 한 번에 치우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이런 요령이 생긴 게 너무 신기했다. 동시에 행여 누군가 미끄러져 다치는 게 더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매우 낯설었다.


병든 노모를 돌보는 세영의 사정이 알려지며, 효자마트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입소문을 타면서 마트 운영이 순풍에 돛 단 듯 잘되기 시작했다. 단골손님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이었고, 일부는 후원자를 자처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제설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그는 점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다만 이해라기보다는 입력된 인자에 따라 최적의 답을 잘 출력하는 성능 좋은 AI 같았다.


폭설이 내렸던 몇 해 전의 그날. 늦은 오후가 되며 눈발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무한 제설작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곤하고 나른한 몸을 겨우 이끌고 왔는데, 쫑이가 밖에 나와있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어서 철문을 앞발로 사정없이 긁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신발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많이 허전했다. 재빨리 안방으로 다가갔다. 불빛도 새어 나오고, TV소리도 들리는데, 그녀만 없었다.


사라진 (Disappear)


"서... 서~양년 고객님!"


은행이나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면, 그녀는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주민등록상 그녀는 '서양년'이었다. 황금 연못에서 잡힌 잉어 태몽을 꾸고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이 '볕 잘 드는 밝은 연못'이라는 뜻으로 '양연(陽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 좋은 이름을, 환전을 대신해 주겠다고 사기 친 그놈이 출생신고도 대신해 주겠다며 가서는, 한자가 어려웠는지 발음만 비슷하게 '양년(羊年)'이라고 대충 신고해 버렸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연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때부터 세상에서 본래의 자신은 사라졌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계집애 대신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차피 내 인생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난봉꾼 남편을 만나도, 그런 놈에게 버림받아도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았다. 열 달간 내 뱃속에서 태동을 느꼈고, 내 배 아파서, 내가 낳은 자식이었다. 누가 뭐래도 내 것이었다. 내 것에게 상처를 주거나, 함부로 대하는 놈은 가만둘 수 없었다.


양연은 교도소를 나오며 그 이름을 버렸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개집애도 같이 버렸다. 그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잃어버린 '내 것'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은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청소노동자 일자리를 지원했다. 다행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 팀장이 잘 말해주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했다. 딸을 더 보기 위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했다. 그리고 그걸 봐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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