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제8화
양연은 약을 먹고, TV 화면을 바라보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방영된 지 10년은 넘었을 옛날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재방, 삼방도 모자라 케이블 TV 채널을 전부 뒤져가며 이 프로그램을 찾아 시청했다. 아랫 동서의 시기에서 비롯된 농간으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속 썩이는 딸만 남은 드라마의 상황이 남일 같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남겨진 이들끼리 대가족을 이뤄 서로를 위로하며 오순도순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약기운에 양연은 조금씩 몽롱하고 나른해졌다. 드라마 속에서는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신혼부부가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서로 오해가 쌓여가고, 엇갈리고 있었다. n회차 시청이다 보니 극의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다. 보다가 잠들기 일쑤였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잠든 적 없다는 듯 떨군 고개를 곧추세웠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몽사몽 간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은호가 왔다 갔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 저 밖에 눈 좀 치우고 올게요~ 너무 많이 내려서 넘어지실까 봐 걱정돼서 안 되겠어요~ 제가 요 앞만이라도 얼른 치우고 올게요~ TV 보고 계세요~'
또렷한 듯 아련하게 들린 목소리... 가까운 듯 희미하게 보인 뒷모습... 양연은 요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너무나 생생했다. 쫑이도 계속 짖고 있었다. 게다가 창밖에는 진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왔었음을 확신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안방문을 열어젖혔다.
"은호야!"
쫑이가 현관문 쪽을 향해 사납게 짖고 있었다. 양연은 머리가 핑 돌았지만 벽을 잡고 버텼다. 그녀가 방에서 나오는 동시에 누군가 방금 나간 듯 철문 소리가 '철컹'났다. 그녀는 철문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문을 힘껏 열어젖히자 이번엔 복도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맨발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얼른 따라가 복도 방화문을 열어젖히며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외침이 가 닿은 곳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느슨해진 (Loosen)
"은호야... 은호야... 은... 호..."
양연의 시야는 눈물로 굴절되어 바로 앞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뒷모습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사내의 팔을 움켜잡고 돌려세웠다. 목이 메어 제대로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울먹이면서라도 억지로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은호야... 어디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드디어... 드디어... 네가 왔구나... 왔어..."
강제로 돌려세워진 사내가 움찔하며 놀랐다. 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 보고 싶은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의 온기라도 느끼고자 와락 안았다. 곧 그녀를 떼어내려는 듯한 부드러운 힘이 가해졌다. 그녀는 완강하게 버텼다. 하지만 이내 힘이 풀리고 사내를 힘껏 안았던 그녀의 팔은 느슨해지고 말았다.
"악! 할머니 왜 이러세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는 전기 검침원이에요. 할머니 아들이 아니~!라고요. 이거 쫌 놓고 얘기하세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할머니!"
양연이 그렇게 한 사내를 붙들고 아들 이름을 목놓아 불렀던 작년 그날... 전기계량기에는 '꼴통 2.1'이라는 글씨가 남겨졌다. 은호의 생일은 2월 1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짐했다. 오늘은 기필코 다시 아들의 얼굴을 보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