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자의 엄마 (제10화)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by 철없는박영감
제10화


양연은 교차로에서 한 이름을 중얼거리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돌려세우고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은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어 보였다. 그녀가 이런 광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눈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타난 그 애의 흔적인데...'이 귀중한 것이 눈에 덮여 사라질까 봐, 그녀는 눈에 닿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좇았다. 조금 전에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전에는 눈을 치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흔적을 좇아 교차로에 도착했다. 엄동설한에 얇은 홈웨어 차림인 것은 둘째 치고, 쌓인 눈이 까매질 정도로 한참 동안 헤맨 양연의 맨발은 빨갛다 못해 검붉어져 있었다. 갑자기 돌려세워져 처음엔 당황해하던 사람들도 이 해괴한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그녀를 붙잡고 사는 곳과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뿌리쳤고, 결국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차에 태워졌다.


세영이 연락을 받고 도착했을 때 양연의 발엔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그리고 잠든 채 입원실에 누워있었다. 나중에 경찰은 주민등록증도, 스마트폰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신원조회가 불가능했고, 첫 실종이었기 때문에 전력이 없어 달리 손 쓸 방법도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한겨울인데 워낙 차림새가 허술해서 위험할뻔했고, 다행히 동상은 걸리지 않았지만 추운 데서 맨발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상처가 많이 생겼다고도 했다.


잠시 후 세영의 누나 미영이 도착했다.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그녀는 양연의 주치의였다. 남매가 병실 밖에서 얘기하는 사이,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지만 아직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녀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에 서있는 그들에게 지나가게 비켜달라며 모르는 양 병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들이 막아서자 그녀는 처음 듣는 낯익은 이름을 그에게 대며 좀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은주의 성을 붙여 되물었다.


"찾는 사람이 혹시... 최... 은호?"


"네 맞아요... 아~ 우리 아들 아는 분들이신가? 우리 은호는 어디 있어요? 내가 분명히 걔 뒷모습을 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얘가 계속 도망만 치고 숨어서 쫓아갔는데... 걔 지금 어디 있어요? 예? 걔 좀 불러줘요. 엄마가 이렇게 애타게 찾고 있다고... 우리 은호 좀 불러주세요... 예?"


분기점 (Junction, BEP)


세영의 전교석차는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어야 했다. 엄마는 그의 성적표에서 전국 순위를 가장 기막혀했다. 절대평가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상대평가 순위에서 밀리면 변수가 등장했을 때 손 쓸 수 없다며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세상은 꼭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문제가 역대 최악의 난이도로 출제되며 그의 점수는 곤두박질쳤다.


첫 해 세영은 의대입학에 실패했다. 그것 보라며... 우려하던 일이 그대로 벌어졌다며... 그를 몰아세우던 엄마는, 권위적인 아버지 앞에서 부탁한 적도 없는 변명을 한참 하며 눈치를 살폈다. 친형제라도 밟고 일어서라는 아버지에 의해 그의 재수가 결정됐다. 자식의 시험 성적표를 자신의 인생 성적표로 착각하는 그들의 등살에 그는 족집게 과외로, 일타강사에게로, 혹독한 기숙학원으로, 여기저기로 내몰렸다.


하지만 삼수까지 했지만 결국 세영은 실패했다. 아니 남자의 엄마는 실패했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배탈로 중간에 고사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시험시간 중 퇴실은 곧바로 실격을 의미했다. 그는 공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고사장을 빠져나와 병무청으로 향했다. 그는 자원입대를 신청했다. 아버지도 말리지 않는 눈치였다. 놀라지도 않았고, 그냥 그대로 사라지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의 엄마는 망연자실했다.


세영은 피해자로 남기 싫었다. 가해자가 되고 싶었다. 그들의 위치에 서고 싶었다. 그는 인생에서 가족들을 지울 가장 잔인한 방법을 계획했다. 약을 사고, 줄을 준비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가해자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위치였나 보다. 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그 가해자들이 극악한 범죄의 희생양으로 둔갑해서 세상에서 지워졌다.


세영의 부모가 고인이 되고 나서 보니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집안의 어른이라며 장례식장에 나타난 친척들은 화장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산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누나 미영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속절없이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당시 수련의 과정의 고달프고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의 손을 끌고 대학입학원서를 같이 쓰러 다녔다.


미영이 세영의 인생에 개입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애쓴 덕분에 그는 명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 분야라면 미래 전망도 밝고 그의 외골수적인 기질에 잘 맞을 것 같았다. 곧 그녀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전도유망하고 능력 있는 의사였지만 그녀도 족쇄가 풀렸다고 느낀 걸까? 심리학을 전공하겠다며 홀연히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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