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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너무 얕잡아봤다

난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6)

by 철없는박영감
우울증은 바이러스병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겸 유튜버가 한국을 여행하고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공중파 뉴스에도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다시 정신질환, 정신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 같다. 정신질환이 많아져서 관심이 높은 건지, 관심이 많아져서 정신질환이 많은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잠깐 미뤄두고, 여기에 주목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헬조선', '극한경쟁', '물질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까? 북한 미사일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어쩜 선거기간에 딱 맞춘 듯...! 이런 시선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부정적인 결과의 해법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출생률 최하위... 이런 우울한 뉴스가 계속 나오면서 세상의 활기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유튜버는 영상 말미에 대한민국의 회복력을 언급한다. 그 회복력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트렌드가 있다. 기억하기로 힐링을 시작으로, 공감, 다양성, 개인적 경험, 마지막으로 최근의 혐오까지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그 트렌드에 따라 주목받는 정신질환도 달라져왔다. 마치 독감이 유행하는 것처럼... 우울증, 공황장애, 금쪽이들을 위시한 트라우마, 마지막으로 요즘의 ADHD까지... 정신질환도 유행이 있다.


마치 앞의 것들이 다 해결된 것처럼 '현대인이라면 그런 정신질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금기시되던, 은연중에 배척되던, 배제되던 음지의 것들이 양지로 나오게 된 것은 엄청난 순기능이다. 그런데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듯이 정신질환도 그럴 것이란 환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버티고, 참으며 임계점을 높이거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대신 발병하면 빨리 약 먹고 치료한다는 편리함의 논리에 빠지고 말았다. 아! 어쩌면 나만... 나는 그랬다.


인스턴트 정신병


이번에 병원에 다니면서 결국 돌고 돌아 신경정신과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을 땐, 결말이 훤히 보이는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예전에 불면증 때문에 찾았던 정신과에서 '경도의...'라는 말과 함께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어느 병원에서건 원인을 못 찾으면 결국엔 신경정신과 병력을 물었다. 그리고 대게 '아~ 이제 알았다!'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외견상 이상이 없으니 그게 맞는 진단이겠지만... 그냥 편리하게 넘기려는 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내 잘못이 크다. 처음 정신과를 찾았을 때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명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커밍아웃이 유행처럼 번질 때였다. 편두통과 불면증으로 계속 괴로운 상태였는데... 열심히 준비하던 성우시험도 떨어지고, 회사에서 인사고과는 개판이고, 부모님의 감정쓰레기통 역할도 신물이 났다. 뭔가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프고 싶었다. 자해를 할 수는 없으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게 우울증이었다.


그래서 정신과 다니면서 상담도 하고, 약도 먹으면서 힐링을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감기 낫듯이 싹 고쳐질 줄 알았다. 꾀병! 그래 꾀병같이 시작했으니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경도'라는 말에 푹 빠져 점점 더 심각해지고 싶었다고 할까? '나 그런 인스턴트 정신병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달까? 마음의 병은 점점 더 깊어졌다. 가볍게 말하면 긁어 부스럼 만들었고, 무겁게 말하면 잠식됐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런데 마음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우울감을 느끼면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라는 말은 틀렸다. 마약같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코로나 시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잘못 쓰였듯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거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 안 된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말뜻을 잘 알아서 듣지만... 잘못된 용어는 변질되기 쉽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표현도 틀렸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살을 방지하겠다고 우울증을 유행병처럼 편리하게 대하는 것은 틀렸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우울증이라는 자위 같은 병명도 지겨워질 무렵... 회사 동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결혼식 전에 동기들 모아서 한 턱 쏘겠다고 언제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은 고인이 된 동기를 만났다.


모임에서 술이 좀 들어가며 나는 우울증 걸린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하기 시작했다. '상사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네... 회사가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네...' 그리고 잠시 후, 그 친구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때까지 우울증은 감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내'라는 응원이면 금방 나으리라 쉽게, 나 편리한 대로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상하게 전화벨이 급하게 울리는 느낌이어서 모르는 번호지만 받았다. 그리고 그 친구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친하지는 않았다. 그냥 회사 동기, 한 살 어린 동생 정도의 아는 사이였다. 어찌 보면 뉴스에서 들려오는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 소식보다 더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에 몸이 마음에 먹혀버렸다. 회사에는 그야말로 정나미가 떨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백신접종 이후로 몸은 더 급격히 쇠해졌고 진지하게 '죽음, 은퇴, 말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러던데 읽어보진 않았지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by 케이틀린 도티


오늘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내 이름은 김삼순'. 여기에 김자옥, 여운계가 나온다. 고인이 되신 지 좀 됐는데... 다시 보니 반갑다. 옆집 아줌마 같기도 하고, 친구 어머님 같기도 하고, 계속 옆에 있는 것 같은데 이제는 이름 앞에 한자 한 자를 더 붙여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둘이서 난투극을 벌인다. 이긴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다. 우울증이 그렇다면 그렇다.


이젠 끝났나? 전원일기 출연자들이 예능을 찍던데... 김혜자, 최불암이 같이 나온다는 소식에 챙겨봤던 기억이 있다. 두 분은 안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나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던 분들이 오래오래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내 안에 희망이 오래오래 살아있으면 좋겠다. 나는 힘든 게 없다. 있어더라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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