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7)
로켓 역학의 저주
아파트 1층 집들은 사생활이 타인에게 노출되기 쉽다. 특히 택배는 뭐가 왔는지, 얼마나 많이 왔는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등등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심풀이 오징어땅콩이 되기 쉽다. 이때 나이 지긋한 부모님 세대가 혀를 차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 집은 살림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이다. 덧붙여 '무슨 택배를 집 앞에 저렇게 많이 쌓아놓고 사냐'며 지나갈 때마다 한소리씩 한다.
'남이사~'이긴 한데, 면전에서 그랬다간 '썩을 것'이 돼버리고 마니, 아니꼬워도 못 들은 채 넘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로켓배송이니... 새벽배송이니... 당일배송, 도착보장, 즉시배송 등등 가만히 보면 참 편리해진 게 사실인데,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나조차도 예전엔 요리하는 시간이 아깝다며 배달음식을 엄청나게 시켜 먹었는데, 훨씬 조금 먹고사는 요즘이 더 배부르고 만족스럽다.
편리는 '(명사)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쉬움'이라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반대말은 '불편'이다. 불편... 아이러니하게 불편하게 사는 요즘이 더 행복하다. 편리하게 돈으로 해결하면 시간이 많이 남아서 더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을 벌려면 다시 시간을 들여야 하니 제로섬 혹은 마이너스가 된다. 플러스가 되는 것은 어지간한 의지 아니고서는 어렵다. '로켓 역학의 저주'라고 하던가? 알쓸시리즈에서 본 얘기 같은데...
로켓에 물건을 많이 실으려면 연료가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연료를 많이 실으면 또 무거워져서 다시 연료를 더 실어야 하고 그렇게 무한대로 늘어나면 결국 한 번에 우주밖으로 갈 수 있는 양과 거리는 한정되어 있다는 그런 얘기인데... 편리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딱 그런 것 같다. 행복을 위해 편리해지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돈을 벌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거나 혹은 불행해지고, 다시 행복해지려고 돈을 쓰고... 버느라 힘들고...?
우주로 쏘아 올려야 행복하다면...
얼마나 많은 행복을, 얼마나 멀리까지 쏘아 올릴 수 있을까? 로켓이면 연료, 생활이라면 돈으로 대변되는 '편리'는 얼마나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정말 그럴까? 행복 한 봇다리를 쏘아 올리는데 드는 연료와 열 봇다리에 드는 연료는 정비례로 증가할까? 그냥 생각해도 아닐 것 같지 않은가? 열 봇다리면 적어도 100배는 더 들 것 같지 않은가? 이런 게 기하급수적인 증가라고 하는 거지 아마? 복리이자 불어나는 것 같다고 하면 더 정확할 거다.
청소시간 아끼자고 로봇청소기 샀는데... 이거 돌리려면 바닥에 장애물이 없어야 버벅대지 않고 잘 청소한다. 그거 정리할바엔 그냥 청소기 돌리고 말겠다. 설거지 시간 아끼자고 식기세척기 샀는데... 이거 돌리려면 테트리스 잘해야 한다. 잘못 쌓으면 안 닦여서 다시 돌려야 한다. 빨리 건조해서 정리하겠다고 건조기 샀는데... 완료 알람이 울려도 '어디 빨래 개주는 로봇 누가 좀 개발 안 하나?' 이러면서 배 벅벅 긁고 누워서 빨래에서 냄새날 때까지 방치한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놓고, 그렇게 시간 아끼고 편리해져서 행복해졌냐면... '돈 버느라 시간 없어서 불행하다',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며 징징거리던 문제가 해소됐냐면...! 음~ 사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니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편리(혹은 돈)라는 늪에서 빠져나와 시간부자가 되어보니,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다.
장 볼 시간이 그때밖에 없다며, 혹은 대량으로 사는 게 경제적이라며 주말에 재료 한꺼번에 사다가 밀프렙이랍시고 일주일치 식사를 한꺼번에 준비하며 살 때보다, 하루하루 마트를 돌며 그때그때 싸고 좋은 재료 조금씩 사서 요리해 먹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주말에 마트에서 장 보면 카트에 담을 때까지는 좋지만, 계산하려면 한참 줄 서야지... 차에 실어서 집에 오면 씻고,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야지... 와우 그런 중노동이 따로 없다. 보관이 잘못되면 버리는 게 더 많을 때도 있다.
자기 결정권
어쩌면 행복해지려고 편리나 돈보다 시간을 더 좇았다고 할 수 있다. 맞다 시간이다. 시간이었네... 더 정확히는 '자기 결정권'이 아니었을까? 그게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자기 결정권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는 아마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금수저가 아닌 이상, 편리나 돈으로 확보한 시간은 더 큰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팍팍해지니까...' 남의 집,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을 보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아우 그냥! 나이 드니까 아주 그냥 오지랖만 넓어져가지고... 아주 그냥 막...!' 아마도 행복해지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거다. 나는 어렴풋이 왜 힘들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 윤곽이 보이는 것 같다. 여러분~!!! 어쨌든~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