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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으로 하루를 살다보니...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한 것 같아요. 반성합니다.

by 철없는박영감
죄송합니다.


오늘은 사죄로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를 찾았다고 썼는데, 없으면 아쉬운 맛으로 먹는다고 썼는데, 오늘 가계부를 쓰다 보니 전혀 아닙니다. 아흑. 용돈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절약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원으로 하루 살기를 계획했습니다. 요즘 무지출 챌린지에 비하면 백수가 아직도 그러고 사냐고 타박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하루에 만 원은 쓰게 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하루에 만 원. 즉, 한 달 30~31만 원으로 살기인데, 2월은 29일까지라서 예산이 29만 원이 되었습니다.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 중에 2월이 짧은 이유는 꽃피는 춘삼월 빨리오라고 그런 거라는 낭만적인 시를 남기신 분도 있는데, 저에게 2월은 예산이 적은 달로 더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만원씩 달력에 표시해서 초과한 날은 다음날 안 쓰는 식으로 계획을 하고 달력에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안 받던 영수증도 꼼꼼히 챙겼죠.


첫 달은 만원을 남겼습니다. 요즘 들어 식탐이 없어진 탓도 있고, 하루하루 조금씩 장 보면서 마트를 냉장고처럼 이용하니 생각보다 하루 만원으로도 돈이 남았습니다. 만원으로 하루 살기 별거 아니네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2월이 됐습니다. 계획대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 명절이라는 복병이 있었습니다. 세뱃돈은 차치하더라도 동생네 집에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덜컥 케이크를 사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로션도 떨어지고, 샴푸도 떨어지고, 갑자기 여기저기서 'empty'불이 깜박였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브영에 가서 그동안 쓰던 '아벤느' 대신에 전 성분 꼼꼼히 체크해 가며 가성비 좋은 녀석들로 골라왔습니다. 그리고 가계부를 정리했는데... 헉! 이미 3월 10일까지의 예산을 다 당겨 써버렸습니다. 아흑흑흑...

세뱃돈과 케이크 선물로 2월 1~15일까지 예산이 후루룩 날아갔어요. ㅜㅠ


그런데...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4만 원 지출했으면 남은 3일을 냉장고 파먹기 신공으로 버티면 되는데, 오랜만에 케이크를 맛본 혀는 그동안 잘 먹어오던 샐러드와 건강식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고물가시대대비를 위한 고객감사 이벤트가 터져 나오며, '스낵면' 번들 한 개가 2,500원! '어머 이건 무조건 사야 돼!' 쟁이고, 비축하는 생활 말고 여투는 생활을 하자고 다짐했는데, 싸도 너무 싼 이벤트에 MSG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이상하게 식도염 때문에 타온 약이 식욕을 왕성하게 하는지, 먹는 양이 갑자기 배가 됐습니다. 금방 밥 먹고 돌아섰는데 고구마를 굽고, 잘 밤에 스낵면을 끓이는 제 모습을 오랜만에 발견했습니다. 이 얘기에 엄마만 신나 합니다. 이제야 우리 아들이 다시 건강해지려나 보다고... 그런 거 맞겠죠? 다시 건강해지려고 식욕이 왕성해지고, 단 게 당기고... 그래도 건강식이 당기면 더 좋은데... 단거 Danger!!! 삐뽀삐뽀!!!


마치 그동안 참았던 것이 폭발하는 것처럼 2월은 그야말로 먹어재꼈습니다.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더니 우리 동네 파리바게트 사장님이 알아봅니다. '달콤 연유바게트' 이게 요즘 제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바게트 사이로 연유크림이 발라져 있는데... 한 개에 3,400원이거든요? 하하 주부 다됐습니다. 가격을 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걸 커피랑 같이 먹으면 오후가 행복해집니다. 오늘은 부끄럽지만 은행 어플에서 베이커리 지출 알뜰하게 누릴 수 있다는 알림도 왔네요. 어지간히 다녔나 봅니다.


반성합니다.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새해 계획 세우지 말고, 무계획으로 마음 편히 살자고... 그런 내용의 글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요즘 글쓰기가 조금씩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통계를 클릭했는데, 지키지도 못할 말들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도 안나는 글들이 제법 눈에 걸립니다. 나름 고민 많이 하고 남긴 글들인데... 내릴 수도 없고... 참 난감합니다.


브런치북들도 보니 차마 눈뜨고 못 볼 글들이 많습니다. '아휴 이런 것도 글이라고 써놨냐...' 제가 봐도 한심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야말로 배설 같은 글들도 있네요. 라이킷 눌러주신 분 한분 한분 찾아가 사죄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한편 아마 내일도 저는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 쥐어 짜내서라도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무슨 감사일기처럼 썼네요. 존댓말도 쓰고... 오늘은 번외로 쓰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거짓말... 앞으로 좀 더 할게요. 인간 되라고... 심하지 않은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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