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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방법 : 말에 옷 입히기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by 철없는박영감
간극


사회생활을 하려면 프레젠테이션 스킬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는 요즘, 검색창에 '말 잘하는 법' 혹은 '발표 잘하는 법'을 한 번이라도 검색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일을 못해도, 프레젠테이션 능력 딱 하나만 갖추고 있으면 대우받는 시대이다. 그만큼 말 잘하는 사람이 귀하다. 그래서 말을 더듬어서 고민인 사람, 대중 앞에만 서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얼어버리는 고민을 가진 사람, 고민의 종류도 다양하다.


검색 결과창에 뜬 동영상을 보면 아나운서나 성우들이 나와서 죄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발음, 발성, 톤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 더 세세하게 말하는 영상에서는 태도나 자세, 말끝을 흐리지 않은 습관 등을 언급한다. 아니 말을 잘하고 싶은 건데...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토론이나 회의에서는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려 기선제압을 하고,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뿜뿜하고 싶은 건데... 왜 발음, 발성, 톤을 얘기하는 거지?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려보면 다양한 스피치, 성우 학원이 나온다. 그래서 찾아가 보면,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차분히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는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건데, 국어시간도 아니고 어법, 장단음, 호흡, 발성을 가르쳐준다. 상상했던 것과 간극이 크다.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강의가 진행되면 발음, 호흡에 대한 지적을 받고, 복식호흡을 훈련하며 고쳐서 마지막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강의가 마무리된다. 이게 뭐야? 난 발음, 발성, 호흡이 아니고 말 잘하는 법을 배우러 온 거라고...


대본


일반인이 생각하는 말을 잘한다는 것과 성우, 아나운서, 배우 등 말하기를 업으로 갖고 있는 분들이 생각하는 말을 잘한다는 것에는 대본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일반인은 성우, 아나운서, 배우를 그냥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 데려다 놓으면 알아서 술술술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하리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다년간 대본 분석, 낭독, 진행, 연기라는 스킬에 의해 사고방식이 연습된 결과이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촌철살인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말 잘하기를 시전 하려면 말을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다. 맞다! 순발력이다. 순발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체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순발력을 타고나는 이는 극에, 극에, 극소수다. 그래서 연기를 잘하려면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면 그 속에 실제로 들어가 연구라도 해야 한다.


요즘 '배우 반상회'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사실 관찰예능은 '나 혼자 산다'를 끝으로 안 보려고 했는데,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출연진 소식에 보기 시작했다. 첫회에 조한철 배우님이, 배역을 맡아서, 그 캐릭터가 돼서, 그들의 입장으로 말을 해오다 보니, TV에서 내 말을 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이 말이 확 와닿았다. 성우, 아나운서, 배우 모두 내 말을 하는 상황이 오면 생얼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담되고 떨린다.


메이크업


그래서 말에 옷을 입혀야 한다. 발가벗고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옷을 입듯이 캐릭터를 구축해야 한다.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커버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듯이, 복식호흡과 발성으로 목소리에 화장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이 발음, 발성, 톤이다. 이런 설명을 중간에 싹 빼고 단도직입적으로 발음, 발성, 톤을 바로 이야기하니 일반인들이 동영상이나 학원강의를 맞닥뜨리면 '이건 뭐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황과 장소에 맞게 옷을 잘 입으려면... 요즘말로 TPO에 맞는 패션 센스를 발휘하려면, 말에서는 캐릭터를 잘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사실 불가능하다. 다중이도 아니고, 정신 분열증 환자도 아니고, 한 사람이 여기선 이랬다가 저기에서는 저랬다가 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 물론 가능한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사기꾼 내지 영업사원이겠지만... 그래서 평소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캐릭터를 잡고 쭉 밀고 나가면 된다.


꼭 청중을 사로잡을 필요도 없고, 배꼽 빠지게 웃길 필요도 없다. 뭐 유머와 위트를 겸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진실이 묻어난다면 그 자체가 유머와 위트가 된다. 그리고 특히 매력과 개성이 된다. 처음에는 '어후 왜 저래?'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캐릭터라는 것이 받아들여지면 사람들은 더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느끼며 마음의 빗장을 푼다. 이것은 글을 쓰면서 더 확실하게 느낀 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말 잘하기 위한 훈련 발음, 발성, 톤을 연습하되,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조금 수줍어하며, 착하게 노래하는 사람은 음치라도 노래로 감동을 줄 수 있다. 좀 깍쟁이에 가끔 이기적인 행동을 보여도 진짜 큰 사건에서 의리를 지키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자신의 캐릭터를 키워서 사람들에게 계속 노출시키는 시도를 해보길 바란다. 하다 보면 아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말해도 사람들이 참 말 잘한다며 칭찬해 주는 날이 올 거다. 거기에 옷도 잘 입히고, 메이크업까지 잘해주면 다른 관점에서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고, 청중을 사로잡아 다른 유형의 카리스마를 뿜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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