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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Apr 17. 2024

그동안 과소비 하고 살았던 거야

2024년 04월 둘째 주

폭탄선언


    예전 같으면 교외 나들이의 마무리는 단골 갈비집이었을 겁니다. 달달한 양념갈비를 숯불에 구워서 상추에 파절이 넣고, 마늘 쌈장에 푹 찍어서 올린 다음 싸 먹으면 왕후장상이 안 부럽습니다. 부모님은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여 먹는데, 기분 좋을 때는 각 1병까지 마십니다. 그런 날은 저의 결혼 이야기부터 손주들 걱정까지 잔소리 종합세트가 펼쳐집니다. 했던 걱정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해도 배부르고 등 따시니 마냥 행복합니다.


    그런데 살인적인 물가상승 때문에 점심 순댓국으로 만족했습니다. 1인분에 18,000원 하던 최애 숯불돼지갈비가 최근에 22,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중간에도 한번 20,000원으로 올랐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3인분만 시켜서 저는 많이 먹으면 아프다는 핑계로 안 타게 굽는데만 집중하고, 부모님 많이 드리고 오면 됐는데... 지금은 밥 먹고, 술 한 병만 시켜도 예전 고기만 4인분 시켜 먹던 가격과 비슷해집니다.


    식당에서 숯불갈비 먹을 때, 성인 3명이서 3인분만 딱 먹고 나오면 살짝 모자란 감이 있잖아요? 그래서 좀 배부르고 푸짐하게 먹고 싶을 땐 4~5인분을 먹게 되는데, 아후 이제는 그러면 가격이 진짜 후들후들해집니다. 그래도 밖에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 좀 그런 것 같아서 그나마 만만한 순댓국만 먹고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합니다. 그러면 숯불갈비 1인분 가격에 세 식구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절약, 절약, 또 절약


    그런데 앞자리에서 신나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아버지 대신 뒷자리로 옮겨 가고는 한 숨을 푹 쉽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집에 가서 누가 차리고, 누가 설거지 하냐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쉽니다. 요즘 일 다니느라 청소며, 설거지며, 빨래며 제가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저도 아프다는 핑계로 등한시하고 있었거든요. 하는 수 없이 저희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부모님 댁은 이상하게 잡동사니가 많습니다. 저와 동생이 살았던 흔적부터, 도통 버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쌓여가는 사용하지 않는 각종 살림살이들, 빛바랜 옷가지들, 화분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매년 봄이면 분갈이만 해도 하루가 훅 지나갈 정도입니다. 이제 해도 지나서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려면 그걸 다 처분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작년에 살림을 합치려고 전 직장 근처 혼자 살던 집을 팔았는데, 절에서 이사하면 큰 일 난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저만 전세를 얻어 나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관리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아직 일 년도 안 지났는데, 앞으로 관리비 계속 내느니 중개 수수료를 물더라도 빨리 살림을 합치는 것이 이리저리 따져봐도 이득입니다.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쨌든 그렇게 저희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전셋집이라서, 냄새 같은 거 안 베도록, 되도록 고기 굽는 것을 지양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좋아진 기분 도로 나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안 써서 녹슬고 있는 아이템들, 잘 돌아가는지 시험도 해볼 겸, 오랜만에 저희 집 고기구이 식사 세팅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자랑 타임...!! 하하하!! 의자까지 3백만 원대, 좀 비싸지만 제가 잘 샀다고 자부하는 식탁입니다.


https://youtu.be/y_Bg-5AOevM?si=HRkPt08N9PrpJ1WT


    한정식 집에 가면, 부루스타 같은 거 없이 테이블 위에서 바로 인덕션으로 전골 같은 거 끓이는 시스템 보셨을 겁니다. 이게 그게 적용된 식탁인데요, 생각보다 좋습니다. 저희 집에 처음 오는 손님들은 다들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는 아이템이기도 하죠. 간단하게 집에서 김치만 가져와서 샐러드로 먹는 상추랑 같이 먹었는데요.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 구이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날 과식해서 아마 지금 아픈 것 같습니다.


    걸신들린 듯, 정신없이 먹고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나니, 아버지가 식탁을 둘러봅니다. 이제야 고기 굽는 데 있어야 할 부루스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자랑스럽게 저의 유니크 아이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점점 두 분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이건 얼마 준 건데?"


    아차차! 실수했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야 했는데, 그냥 별 것 아닌 것처럼, 마치 키오스크처럼, 두 분만 모르고 있는 이미 범용화 된 신기술처럼 넘겼어야 했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등짝 스매싱이 두려워서 이실직고는 못하고, 손가락 2개만 소심하게 펴 보였습니다. 네 거짓말입니다. 3백만 원 후반, 거의 4백만 원 가까이 됩니다. 뒷 목까지 잡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동시에 뒤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본전


    덕분에 앞으로 주말마다 저희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 식탁, 본전 뽑아야겠다며 그러자고 합니다. 아~ 이번 주말에는 동생네까지 부르자고 합니다. 마침 조카 생일이 다음 주 거든요. 아마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 뭐 됐다고 하죠? 네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탭니다.


 "너 그동안 되게 과소비하고 산 거야!!"


 "그러게요. 지금 보면 그렇네요. 그래도 그때는....!!"


    말을 급히 멈췄습니다. 글을 쓰면서 새롭게 생긴 능력이 앞 날을 내다보는 능력입니다. 말을 더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빤히 보였습니다. 요즘은 하루에 만 원 한 장도 벌벌 떨면서 쓰는데, 그때는 10만 원은 우습게 썼던 것 같습니다. 매일 술값내고, 명품사고, 얼리어답터라며 신제품 사모으고... 지금 보면 참 부질없이 살았습니다. '지금의 정신상태를 가지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라는 늦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질없이 살고 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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