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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Apr 23. 2024

이렇게 쓰지 말고, 이렇게 써봐

2024년 04월 셋째 주

아이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지난 주말에는 조카들이 다녀갔습니다. 첫째가 이번주 생일이었거든요. '무슨 선물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대형서점으로 갔습니다. 아이들 엄마가 이제는 장난감보다 좀 더 교육적인 선물을 좋아한다는 동생의 말이 떠올랐거든요. 장난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비싼 것으로 플렉스 하게 양보하고, 저는 부모들이 좋아할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사줄 요량으로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지 마땅한 책이 없더군요. 요즘 그림책들은 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준이 좀 낮은 것 같았습니다. 동영상 매체가 훨씬 발전해서 그런 것인지, 감성이 느껴지는 책이 눈에 안 뜨이더군요. 내용, 삽화, 책 만듦새...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습니다. 제가 책 고르는 기준이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쪼~기 구석에 작은 칠판 같은 것보였습니다. 어렸을 때, 까만 먹지 같은 칠판그림을 그리고, 옆에 달린 막대기를 슥삭 움직이지워지는 연습장 장난감을 갖고 놀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여 LCD로 된 칠판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버튼을 누르면 싹 지워지더군요. 게다가 얼마 전에 애들 아빠가 가족 단톡방에 조카가 알파벳과 이름을 썼다며 사진을 올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이에게 적당한 크기의 LCD칠판을 선물로 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더군요. 특히 크기나 무게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저렴하더군요. 선물을 사고 서점을 둘러보는데, 또 한 가지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유리컵밖에 없어서, 그동안 조카가 물 마시는 모습이 좀 위태위태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예쁜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컵을 사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예쁘고, 한국산에, 무독성이고, 크기도, 무게도 적당한 컵이 눈에 띄었습니다. 속은 스테인리스, 겉은 플라스틱이라서 이름도 쓸 수 있겠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자기 컵에 자기 이름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같이 샀습니다.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고, 커팅식, 선물전달식까지 마쳤습니다. 조카에게 마실 거 줄까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더군요. 


    '바로 이때다' 사 와서 씻어 놓은 컵을 가져와 큰아빠가 너를 위해 준비한 컵이라며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습니다. 컵을 보더니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주스를 마시고 있는 조카를 보며, '큰아빠가 집에 가져갈래? 아니면 큰아빠네 올 때마다 쓰게 여기 두고 갈래?'라고 물어보니 두고 간답니다. 하하하 작전이 술술 풀리고 있습니다. 


    그럼 큰아빠네 집에 두고, 이름 써놔서 다른 사람이 못쓰게 하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집 애들만 그런지는 몰라도 대게 뭔가 보여달라고 멍석 깔아주면 쑥스러움에 안 하려고 하더군요. 작전을 짜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데 성공! 애들 아빠도 자식 자랑할 마음에 살짝 들떠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오기 전에 사놓은 네임펜을 꺼냈습니다. 


짓다


    '우리 컵에 이름 써보자'라고 했더니 아이가 펜을 받아 들고는 이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컵에 넓은 공간을 놔두고 좁은 손잡이 부근에 그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 안돼! 넓은 데다 써!'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오은영 선생님에 빙의하여 그렇게 하면 아이의 창의력을 떨어뜨리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수동적인 아이로 만들 것 같았습니다. 그 대신에 '와우'라며 감탄사를 연발했죠.


    아이는 신나서 자기 이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자를 쓰는데 'ㅂ'이 너무 큽니다. 도저히 'ㅏ'를 쓸 빈 공간이 없는데,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데... 뒤통수를 한방 맞았습니다. 아이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격식, 형식, 틀에 갇혀 걱정하는 것일 뿐... 아이는 손잡이까지 활용해서 멋지게 자신의 성씨를 적었습니다. 더욱 입체적이고, 예술적이고, 자유로웠습니다. 부끄럽더군요.


    안타깝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의 글씨 쓰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쓰면 안 돼... 이렇게 써봐'라고 아이에게 규칙을 설명... 아니 주입하더군요. 예전에 저와 동생이 배웠던 것처럼... 그것도 놔뒀습니다. 아이가 그런 기분도... 누군가 약간 강제? 강압? 적으로 시키는 기분도 느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제받는 마음에서 효(孝)가 시작된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는 것을 직업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 뇌피셜일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진짜 다양한 경험을 시키는 것은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세대, 다양한 신념, 다양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해 보고 느껴보는 것이 아닐는지... 제가 교육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리고 부모도 아니지만... 이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틀렸다 해도 다행히 저는 가끔 보는 큰아빠니까 괜찮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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