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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y 21. 2024

"뉘신지~?" AI사진 앱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2024년 05월 셋째 주

내 마음속에 저장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추억(증거)을 남겨야 한다. "찍을게요. '찰칵!'" 아직 사진 찍을 때 '김치'라는 구령이 필요한 나는 구닥다리다. 이제는 팔 길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다. 사진봉이 있다. 용기 내어 요즘 아이돌이나 한다는 '볼하트' 포즈를 취해봤다. 똑같은 구도로 손모양만 바꿔가며 여러 장 찍었다. 사실 노안이라서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내 모습이 흐릿해서 잘 안보였다. 하자고 하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냥 열심히 했다.


    사진이 저장된 폰 주인이 본인 얼굴이 크게 찍힌 것은 다 지우고, 남은 사진에 고양이 귀, 토끼 귀도 그려 넣고, 하트도 그려 넣은 후 보여줬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사진 속에 저분들은 뉘신지~?' 주인에게 항의했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무슨 이런 요사스러운 사진이 있냐고...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연신 사진 속에 저분들은 누구인지 물었다. 잔소리 말고 그냥 포즈나 취하란다. 반쯤 포기하고 결론 내렸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찍어주는 사진이구나~!!!"


누군지 못 알아본다면서도 모자이크는 꼼꼼히 했다. 내면의 추함을 들킬까 봐~!!!


껍질을 깨다


    한참 꾸밀 나이였던 40대 초반... 그루밍 족을 표방하며 피부과도 다녀보고, 에스테틱에서 안면 축소술이라고 하는 마사지도 받았었다. 여름휴가 기간... 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일주일 가까이 하다가 우연히 거울을 봤다. 그 속에는 웬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삐뽀! 삐뽀!' 비상등이 켜졌다. 그동안 방탕하게 생활해 온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절없이 흘러버린 세월만 야속해했다.


    결국 유튜브를 찾아가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꾸안꾸 스타일로... 남자가 화장한 거 티 나면 창피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 화장은 하면 할수록 피부가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그걸 감추려고 더 많은 화장품을 필요로 했다. 화장은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에 화장실에는 세안제품뿐만 아니라, 디바이스라고 하는 전자제품도 늘어났다. 'O리브영'에서 사모으던 화장품은 백화점 명품 코너로 옮겨갔다.


    화장술도 점점 발전했다. 처음에는 덕지덕지 바른 파운데이션이 시간이 지나며 땀에 뭉치고 갈라지고 들떴다. 게다가 마스크라는 복병을 만나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마스크에 묻어나는 파운데이션이 부끄러웠다. 유튜브에서 메이크업 전문가들의 영상을 보며 '꾸안꾸' 화장은 안 좋은 곳은 포기하고 좋아 보이는 곳을 더 좋아 보이게 해서 전체적인 인상이 피부가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이 비결임을 깨우쳤다.


난 요즘 내 표정이 좋다.


    결과적으로 화장품과 미용기구에 돈 쳐 바르는 것보다 피부관리가 훨씬 경제적인 그루밍 방법임을 깨달았다. '자동차 튜닝의 끝판은 순정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화장이라는 것이 결국은 피부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고, 색조화장은 맑은 피부를 표현하고 나서 얼굴에 없어진 음영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화장을 딱 끊고, 선크림만 바르고 다녔다. 한동안 금단증상으로 괴로웠는데... 지금은 선크림도 안 바른다.


    이제는 피부상태나 얼굴크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을 거울로 확인하면 그게 더 좋다. 두려운 게 점점 없어지며 아등바등하지 않는 내면을 확인하면 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이런 기분이라면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내가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참 지난 후에...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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