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박영감 May 27. 2024

가르다

2024년 05월 넷째 주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이번 주는 지극히 작고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큰 변화가 있었던 주였습니다. 이유 없이 어지럽고, 계속 기운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이번 주는 혼자 있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계속 집에만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책은 못 읽겠고, 기운도 없고 눈도 아파서 드라마도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시간이 약이겠거니'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리고 싶어 지더라고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뇌에서 살라고 신호를 준 것일 수도 있고..., 근육들이 퇴화 직전에 마지막으로 발악을 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누워있는데 갑자기 온몸의 세포들이 밖에 나가서 뛰고 오라고 외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 운동복을 차려입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그리고 중량천변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물론 100미터도 못 가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참나! 뭐 했다고... 마치 마라톤 풀코스라도 완주한 것처럼 목에서 쇠맛도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질 체력을 반성하며 그렇게 겨우 100미터 뛰고 돌아왔습니다. 아휴 진짜 뭐 했다고 땀도 엄청났더군요. 젖어있었습니다. 샤워를 냉수로 하는데 차가운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왔는데, 우와~ 이렇게 상쾌할 수가... 아마도 이런 기분 때문에 중량천변에 '런너'들이 그렇게 많은가 봅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제의 일을 교훈 삼아 낮의 더운 공기를 피해 선선한 새벽에 나왔습니다. 피식! 하루 뛰었다고 조금 자신감이 붙더군요. 이번에는 호흡도 신경 쓰고, 어제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더 뛰겠다는 의지도 다졌습니다. 하하하! 하니까 되더군요. 거의 전날의 두 배 정도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나한테 오롯이 집중하고 나니 호흡뿐만 아니라, 근육의 움직임도 인식이 되더군요. 나름의 성과를 이루고 뿌듯하게 집에 돌아와 다시 상쾌함을 맛봤습니다.


    삼일째 날, 이번에도 의지를 다지며 출발했습니다. 이튿날 까지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혼자 달리는 기분이었다면, 이 날부터는 주변이 좀 의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많은 '런너'들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허~ 나이 지긋한 한 노인이 제 옆을 쌩하고 추월해 지나가는 겁니다. '저 정도는 따라잡아야지'라는 생각에 하찮은 승부욕? 과시욕? 이 발동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버페이스로 따라잡기는커녕 첫날보다 더 못 뛰고 멈췄습니다. 토할 듯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짚고 서있는데 앞서 간 노인은 뒷모습조차 보이지도 않더군요.


글로 배웠어요


    어!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이 장면... '뭐지? 뭐였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느낌? 생각?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정확히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미우라 시온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달리는 기분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해서 읽는 내내 같이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게다가 '달린다'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던 소설... 처음에 띠지를 여사로 보아 넘겼는데...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됐었나 봅니다. 영화, 만화도 있는 듯하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는 소설의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운동화 고무바닥이 딱딱한 아스팔트를 박찼다. 그 감촉을 맛보면서 구라하라 가케루는 소리 없이 웃었다. 발끝에 전해지는 충격을 온몸의 근육이 유연하게 받아서 흘려버렸다. 귓가에서 바람이 울렸다. 살갗 바로 밑이 뜨거웠다. 아무 생각 없이도 가케루의 심장은 온몸에 피가 돌게 하고 폐는 막힘없이 산소를 빨아들인다.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어디까지든 달려갈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디까지? 무엇을 위해?' 그제야 가케루는 자기가 지금 뛰고 있는 이유가 떠올라 속도를 약간 늦췄다.』


    거의 첫 장면인데... 이 작가의 작품들이 저에게 대게 이렇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초반의 정말 좋은 문장 때문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 <배를 엮다>가 그랬고, <사랑 없는 세계>가 그랬습니다. 아마 브런치에도 저의 몇몇 글을 읽고, '다른 글은 어떨지...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시고, 구독해 주시고, 응원도 해주셨겠죠? 음... 중간에 실망한 분들도 있겠고, 한 번 믿어보자고 기다려주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으로 저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주입니다. 물론 예전처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는 말 못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관심 끌고 싶은 마음에 회사 다닐 때 마음에도 없는 저런 소리 사장님한테 참 많이 했더라고요. 다만 글로 봤던 달리기에 매료되어서 끝까지 책을 읽게 되고, 힘든 순간 무의식에서라도 그것이 떠올라 달리고 싶어 졌던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달려보니 그때 읽었던 것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처럼 스며드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는 뭔가 한 스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뉘신지~?" AI사진 앱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