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이 감동하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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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둘째 조카의 돌잔치가 있었다. 거리 두기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서 가족들만 작게 모여서 축하했다. 첫째 때는 매월 10만 원씩 부은 적금 통장을 선물했는데, 둘째는 금반지만 선물했다. 똑같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백수가 되고 수입이 없어지면서 적금을 유지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홈쇼핑에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해서 대신 주문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계산을 잘못해서 카드대금이 가지고 있는 현금보다 많이 나왔다. 돈 대부분이 예금에 묶여 있어서 최후의, 최후의, 진짜 최후의 수단으로 중도해약을 선택했다. 이제는 현금이 준비되었지만 돌잔치는 끝나버렸고, 적금을 부은 흔적이 있는 통장도 없어졌다. 일 년간 준비한 정성을 날려버린 셈이다. 남들은 모를 죄책감이 생겨 마음속에 블랙홀이 하나 생겼다. 금반지는 반짝였지만 그 빛을 블랙홀에게 모조리 빼앗겼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래서 부모님들은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자식들에게 다 퍼주는가 보다. 다행히 동생네가 돌반지를 기쁘게 받아줘서 마음의 짐은 조금 덜었다. 어쩌면 선물에 담긴 마음보다 얼마가 담겼는지를 더 중요시한 내가 스스로 마음속에 지옥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한 10년 전쯤 동생이 이직을 하면서 중간에 시간이 생겨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고 했다. 월급은 뻔하고, 퇴직금도 많지 않을 건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나 보다. 혹시나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비상금을 조금 챙겨줬다. 급할 때 현금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는데, 선물을 사 왔다며 명품 벨트를 내밀었다. 갑자기 비상금 하라고 준 돈을 여기에 썼다고 생각하니 서운해졌다. 내가 원래 명품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비상금으로 사 와야 할 만큼은 아니었다. ‘마치 선물을 사 오라고 돈을 준 것처럼 보였나?’ 걱정하는 마음이 퇴색된 것 같아 속상했다. 괜히 선물 준사람 무안해지게 이런 거 필요 없다며 반품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아... 내가 조금 더 들었어야 하는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성급했다. 동생은 여행 중 명품매장 경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카드는 한도가 초과되면 더 낭패이니 나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내가 준 비상금이 있어서 들어가서 자기 것도 아니고 내 거를 샀다고 했다. 자기에게 명품매장 경험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가격도 매장에서 제일 저렴한 것이라서 비상금도 많이 남았다고 했다. 아... 이렇게 깊은 뜻이... 얼마가 담겼는지만 보고, 무엇이 담겼는지 못 본 것이다. 명품 벨트는 아까워서 많이 안 차고 옷장에 잘 보관 중이다. 10년 전 명품매장 쇼핑백도 같이 잘 보관 중이다.
뻔한 얘기지만 선물은 비싸고 화려한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고민한 흔적이 조금이라도 묻어있는 선물이나 이벤트는 훨씬 큰 감동을 선사한다. 조카 돌잔치 답례품으로 머그컵을 받았다. 머그컵이 대부분 중국산일 거고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서 그대로 가방에 넣고 포장도 뜯지 않고 있었다. 오늘 차를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머그컵이 생각이 나서 꺼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졌다. 중국산이 아닌 독일산일뿐만 아니라, 내 별자리가 새겨진 컵이었다. 그리고 내가 왼손잡이인 것을 알았는지 왼손으로 컵을 들기 매우 편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차를 마실 때도 입을 대는 부분이 살짝 올라와 있어서 자연스럽게 식으며 그동안 먹어왔던 같은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더 맛있어졌다. 머그컵 안에 담긴,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난 언제 사람 되려나 싶다.
앞으로 선물은 허튼 것은 안 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비싸고 화려한 선물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받는 분이 처음에는 약간 실망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을 알게 되면 더 큰 감동을 받는 선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생각하고 있는지… 선물 말고도 다른 일에서도 얼마를 담느냐, 몇 개를 담느냐 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