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더 듣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서로의 말이 계속 오버랩된다. 대화 중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나 보다. 말이 아직 안 끝났는데 상대방이 말을 시작한다. 일단 하던 말을 멈추고 들어본다. 같은 주제 같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다른 주제다. 아마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말하고 싶었으리라. 상대방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만 속으로는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지?’라는 의문이 계속 든다. 누군가는 귀명창이 돼라 하고, 누군가는 인간관계의 첫 번째는 듣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성공하려면 듣고 나서 질문을 하라고 해서 '그래 나는 배운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그냥 내버려 두긴 하는데, 상대방이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배려해 준 거라는 사실은 아는지,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참고 참다가 결국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건 그거고. 그래서 아까 내가 하려던 말이..." 상대의 말을 끊고 내 말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듣는 척을 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그런 표정으로 있어봐서 잘 안다. 얼굴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내 말에 전혀 관심이 없고 '갑자기 무슨 말이지?'라는 놀람과 자기 말이 끊긴데 대한 원망 어린 눈빛, 입이 근질거려 입술을 앙 다문 표정이다. 겨우 대화가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조금 전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이런 일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일수록 더 심하다. 안부를 물으며 건강은 괜찮냐는 질문에 요즘 간이 안 좋아져서 회사도 그만뒀다고 얘기했는데… "일은 잘되시죠?"라고 묻는다. “I am fine. Thank you. And you?” 같은 디폴트 질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상대방도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아마도 나중에 카톡이 오겠지... 왜 지난번에 만났을 때 그만뒀다는 얘기 안 했냐고... 이런 부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해서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장면이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없이 살아간다. TV에서 매일 나오는 얘기다. 만날 서로 '내로남불'이라고 주장한다. '내로남불'이 사전에 곧 등재될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확실히 줄여야 한다. 사실 귀 기울여 듣고 싶어도 상대방이 말이 너무 많을 때가 있다. 칭찬도 몇 번 들으면 지겨운데... 하물며 잔소리나 꾸짖는 경우는 어떨까? 팀장 회의시간에 부서장은 항상 꾸짖고 혼냈다. 이렇게 하라고 해서 이렇게 하면 저렇게 안 했다고 혼내고, 그래서 다음번에 저렇게 하면 이번엔 이렇게 안 했다고 꾸짖는 식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는 불가능한 일을 시킨다. "다 너 생각해서 얘기하는 거야. 이런 얘기해 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고 나중에는 포장까지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진짜인지…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밖에 없을 것이다. 진심은 '네가 내 말 안 들어서 속상해. 내 말 좀 들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직상 상사나 선배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친구, 연인 또는 부부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사회 속에서 자연스러운 생각이라는 뜻이다. 꼭 세대나 갑을관계로 나누어서 편을 가를 필요가 없다. 가스라이팅이라고 매도할 필요도 없다. 그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 판단이고, 싸워 이길지 말지는 내 몫이다.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인간관계 잘하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려고 하니 그 안에서 상처가 썩어 문 드러 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대항해서 싸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삶이 피곤해진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흘려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I am fine. Thank you. And you?”처럼...
“너나 잘하세요”.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매우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했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문법을 파괴한 오묘한 조화.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예의 바른 독설의 통쾌함. 이영애 배우의 고상한 똘끼. 이 대사 한마디로 '친절한 금자씨'는 나에게 있어서 명품영화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했던 대사는 여기저기 오남용 되면서 이제는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 더 이상 듣기 싫어'라는 뜻의 함축어가 돼버렸다. 처음의 신선한 충격은 그저 '눈감고 귀 닫아'라는 비아냥의 대명사로 전락해 버렸다. 눈감고 귀를 닫으라는 요즘... 말이 많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겸손하고 현명한 사람일수록 많이 듣고 적게 말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잊어버릴 것 같아도, 상대방이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을 해도, 끝까지 듣고 얘기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싶은 말을 잊어버리면 어떤가? 나중에 생각났을 때,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는다. 토론에서 주장을 다 듣지도 않았는데 말을 끊고 반박해 버리면, 상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반박을 당하게 되어 감정이 상하게 된다. 토론장에 논리는 사라지고 감정싸움만 발생한다. 상대방은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 그나마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쉬운 것은 나 자신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내가 더 듣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