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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Aug 26. 2024

울퉁불퉁 모양도 제각각

주말에 뭐 했어요? (25)

뭐~ 그렇게~ 못 살 것 같진 않던데...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그동안 TV에서 '최장기간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네...', '어느 지역이 관측사상 최고온도를 갈아치웠네...' 연일 보도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상하게 올여름이 역대급으로 덜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작년에는 밤에도 에어컨 없으면 못 견딜 정도로 힘들었는데, 올해는 낮에도 찬물 한 번씩 뒤집어쓰고, 할인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다 먹고, 얼음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더라고요.


    열대야라고 하는데도 밤에 선풍기 약풍으로 틀어놓고 잘 잤습니다. 낮에도 에어컨 틀고 있었던 적이 손에 꼽을만하고요. '처서매직'을 올해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런데 요즘 아침저녁으로는 많이 시원해졌죠? 밤에 이불을 덮고 자야 될 지경입니다. 그동안 워낙 더웠던 지라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진 걸까요? 25도 밑으로 떨어진 새벽 찬바람에 연신 재채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뉴스에서 너무 설레발친 건 아닐까요? 사실 요즘은 날씨 소식보다 뉴스 자체가 너도 나도 못살겠다를 외치는 것 밖에 없어서... 보고 있으면 짜증만 납니다. 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꼭 '못 살아야 돼!'. '힘들어야 돼!'. '각자도생이야!', '음주운전, 이상동기범죄, 빚더미에 올라앉은,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혐오가 들끓는 나라야!'라고 강제로 세뇌시키는 것처럼요.


햇사과


    정말 우리나라가 그렇게 지옥 같은 곳일까? 날씨도 더해서? 요 근래 마트에 가보니까 햇사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아직 예전처럼 저렴하진 않지만, 이래저래 조금은 싸졌더라고요. 그동안 멍들고 벌레 먹은 못난이 저장사과만 먹다가, 비슷한 가격代에 햇사과를 사 오니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홍로'라는 사과 품종 같은데, 부사 같이 땡글하니 예쁘진 않지만, 울퉁불퉁 지맘대로 생긴 사과가 도리어 생기발랄해 보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과', '개성이 강한 사과'라고 제가 이름 지었습니다. 물에 씻어서 식초물에 담가놨다가 헹궈서 냉장고에 넣는데요. 예전에 부사들은 비슷한 크기에 균형도 잘 맞아서 야채칸에 넣어놓으면 서랍을 여닫을 때에도 넣어 둔 대로 대형을 잘 유지했는데... 생명력 넘치는 제각각의 햇사과들은 넣을 때부터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라서 한 줄에는 4개, 또 다른 줄에는 3개...


    야채칸 서랍을 열고 닫을 때도 여백이 남는 공간으로 전부 데구루루 굴러갑니다. 말 안 듣는 우리 집 6살 조카 같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더 좋습니다. 애들이 너무 말 잘 들어도 매력 없습니다. 간혹 징그럽게 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순하고 착한 애들은 당연히 이쁨 받고, 칭찬 듣고, 상 받겠지만, 기억에서 금방 사라집니다.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은 가만히 있다가도, 폭염 소식이 들려오면 '이 녀석! 더운데 엄마 아빠 고생 덜 시키고, 말 잘 듣고 있나?'라고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어른들에게 칭찬받겠다는 욕심으로 어릴 때 모범생으로 살아봤는데요. 차갑고 어두운 냉동실에서 온갖 보존제로 화학처리되어 비싸다고 욕먹으면서 팔려나가는 저장사과처럼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푸석푸석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사 먹기는 하는데... 햇사과만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그런 소식만 들려와도 시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햇사과도 나오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런 뉴스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햇사과같이 생명력이 넘쳐서 그런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에 조금 더 공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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