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먹고 죽을래도 없다. (5)

by 철없는박영감
일 안 합니다. 돈 안 법니다. 그냥 쉬어요.


백수로 오랜 기간 지내다 보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지했다. '그래도 OTT는 봐야지'라는 생각에 광고형으로 남겨뒀다가 그마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완전히 올스톱했다. 드라마 시청을 좋아하는 해비유저이다 보니 더 이상 볼만한 게 없기도 했다. 그러다가 LG전자에서 Web OS 10주년 행사로 'wavve' 1개월 무료 시청권을 준다고 했다. 바로 등록했다. (LG TV 보시는 분들 이번주까지 행사인 것 같아요. 빨리 챙겨 보세요. ^^ 광고하는 것 같이 돼버렸네요.)


오! 드디어... 이번 '그와 그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을 쓰면서 자료 조사차 BL 드라마를 보던 중에 개별구매로 비싸게 묶여있어서 못 봤던 '30살까지 동정이면...(생략)'을 봤다. 많이 보고 싶었고, 기대했었던 드라마인데, 소설 쓰기가 끝나서인지, 아니면 희소성이 반감돼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제 관심에서 멀어져 열정이 식어서 그런지, 반짝여야 할 내 눈은 썩은 동태 눈깔처럼 자주 초점을 잃었고, 연신 하품을 하고 나서야 겨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흥 내가 쓴 소설이 더 재밌다 뭐!'라는 나르시시즘의 발현일지도... (흐흐흐 아마 몇 달 뒤에 다시 읽게 되면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창피해질 거다.)


이 'wavve'의 특징은 8~90년대 고전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지붕 세 가족', '유머 1번지' 등,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면서 14인치 브라운관 TV로 보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보든 안보든 그냥 틀어놓고 옛날 드라마 연기를 듣고만 있어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한 달간 시간 참 잘 갔다. 그렇게 무료 시청이 순식간에 끝나고, '돈 아깝게... 지상파 방송이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하던 나는 어느새 도파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렇게 비판하던 유튜브를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유튜브에는 이런 알고리즘 뉴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오호통재라. 아무 일 안 하고 집에서 노는 백수는 내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MZ세대 청년 백수 인구 급증. '그냥 쉬었어요' 2,30대 청년백수 OOO명 돌파...」


'그냥 노는 사람이, 전체 인구도 아니고, 2, 30대에만 저렇게 많다고? 아니 YONO가 대세가 될 정도로 쓸 돈도 없다면서 기반도 없는 젊은 친구들이 돈을 안 벌면 뭐 먹고살지? 그러고 보니 나도 요새 통장잔고를 신경 못썼는데... 아무리 퇴직금과 그동안 저축한 게 있다고 해도...'


브런치스토리 작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를 달고 활동하다 보니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건강악화라는 이유 말고, '왜 퇴사를 했었지?'라는 이유가 가물가물해진 요즘... 그리고 일 년간 발행한 글로 '불행추구권'이라는 브런치북을 발행하게 된 요즘... 다시 현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는 거보단 낫잖아요.


'헉!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갔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뉴스 기사에는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는 거보단 낫잖아요'는 거의 절반 이상 포기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내가 그랬다. 뭐 나만 그랬을 수도 있고... 구조적 모순이라며 환경 탓을 했지만, 결국은 이상향과 현실이 완전히 다른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졌다. 'N포 세대'와는 다르다. 포기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문제'라는 소린데... '내 탓이오'로 쉽게 변질되고. '자기혐오'로 까지 발전할 수 있다.


'내가 팀장이면 팀원관리를 이렇게는 안 할 텐데... 내가 인사팀이면 성과평가를 이런 식으로는 못하게 할 텐데... 내가 사장이면 이 따위로 방만하게 경영하진 않을 텐데...'라는 가정법式으로 쌓았던 불만을, 실제 그 위치에 가서는, '내가 요즘 신입사원이면 더 열정적으로 일 할 텐데... 권리를 찾기 전에 의무를 먼저 다해야지...' 같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아~ 이불킥도 이불킥이지만, '왜 사니?'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한참 괴로워하다가 결국엔 '죽는 거보단 낫잖아요'란 결론을 내리고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두 부류로 나뉜다. 안면몰수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월급충으로 남거나... 무모하게 뛰쳐나와 할일 없고 능력 없는 백수가 되거나... 아니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자연인되는 것 까지 포함해서 세 부류로 나누는 것이 더 맞겠다. 어디까지나 포기자를 나눈 거다. 물론 계획적으로 자기 계발에 힘써서 사업도 일으키고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에세이도 쓰고, 자서전도 쓰고... 결국엔 사기꾼도 되고...


흐흐흐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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