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에선 지금 문해력이 뜨거운 감자

먹고 죽을래도 없다. (6)

by 철없는박영감
K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밥 딜런 이후 최고의 깜짝 수상 소식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끊었던 국뽕이 다시 차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아무 상관없다면 상관없는 이 소식에 마치 자식새끼가 상을 타온 것 마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안 자도 피곤한지 몰랐다. 나는 45살이 넘은 미혼남이다.


'K'


이 11번째 순서의 알파벳은 이제 명실상부 우리를 대표하는 문자가 되었다. 많은 콩글리쉬에서 쓰이는 한국의 '우리'라는 공동체적 표현을 이해하는 사람이 이제 많아졌다는 소리도 되겠지? 한국의 문화는 POP,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를 넘어 이제 클래식 음악, 문학 같은 예술 분야로 까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그냥 상도 아니고 무려 '노벨 문학상'아닌가.


뜨거운 감자


지금의 기분으로는 한 동안 국뽕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일부 쓰잘 떼기 없는 고스펙의 시기, 질투가 있지만, 분위기상 독을 품은 싹 난 감자 정도로 취급되는 것 같다. 대신 지금의 '뜨거운 감자'는 '문해력'이다. ('뜨거운 감자'는 민감한 논란거리의 영어식 표현을 직역한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해프닝급 실수담을 또 학원 만들려고 과대포장하나 보다 하고 웃어넘겼는데, 뉴스에서 연일 전하는 우려는 그렇지 않다. (예전엔 이런 것들이 개그 소재였는데… 어린 세대에 대한 꼰대질하는 이런 기사가 클릭 수가 많은 가보다.) 그래서 좀 자세히 들여다봤다.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논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2년 가까이 글로 놀아봤다면 놀아봤기에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다.


문제는 한자다. '감사합니다'를 '고맙습니다'의 고급 표현, 혹은 높임말로 알고 있는 것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뉴스 앵커들의 끝인사에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건방지다며 걸고넘어지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도 한동안 '단어'가 익숙해서 이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낱말'로 쓰려고 노력 중이다. 학교 때부터, '영단어'라는 말을 많이 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 글자 한자, 중국 글 한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문해력 논란을 가중시키는 말은 일제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지겹게 듣지 않았나... 금일, 당일, 익일, 명일, 우천 등등. 지난 추석에 조카랑 횡단보도에 서있다가 신호가 바뀌어서


"파란불이다. 건너자"라고 했더니,


"삼촌, 초록불을 왜 파란불이라고 해?"


라고 되묻는데, 당황한 나에게 일본의 통행 신호가 파란색이라고 제수씨가 알려준다. 우리, 아니 나에게는 '파란불'이 그저 고유명사였을 뿐인데, 6살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이야기


뉴스에서 언급하는 얘기들 중 앞의 사례를 뺀 나머지는, 바빠서 자세히 안 보고 얼핏 보면 실수할 수 있는... 그냥 살다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고, 몰랐다고 해도 한 번 실수로 평생 잊지 않고 고칠 수 있는 수준이다. 이걸로 한글이 파괴되거나 우리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세대에게는 한자보다 영어식 표현, 꼭 남의 나라 말이 아니라도, 순우리말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도 우리 문화를 잘 이해하고, 한글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우수한 번역가들의 공로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문화가, 우리 글이 꼭 옛말을 이어받지 못해도, 아니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반증 아닐까? 사라지는 것이 그저 서글픈 뿐이지 큰 일 나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글이란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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