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을래도 없다. (8)
점프
어릴 때는 동네 형, 누나, 친구, 동생 등 비슷한 또래들과 같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며 놀았다. 돈이란 개념도 없었고, 네꺼내꺼 개념도 없어서, 놀다가 배고프면 다른 집에 가서 간식도 먹고, 밥도 먹고 그랬다. 기껏 어린애 하나 밥 먹인다고 기둥뿌리 뽑히는 집은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절... 오늘 너네 집에서 먹이면, 내일은 우리 집에서 먹이고... 뭐 그렇게 서로 나눠 먹이며 살았다. 한 마을이 아이들을 같이 키워내던 시절이다.
요즘이야 놀이터나 학교... 아니다 이것도 옛말이지. 요즘은 같이 놀 친구들을 찾아서 키즈카페에 가거나 학원에 보내서 놀게 한다지 아마? 그래서 '노키즈 존'이 한참 논란일 때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리드하는 나이 많은 형이나 누나가 있었고, 그 아래로 나같이 나이 어린 똘마니들이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대롱대롱 포도알 마냥 매달려 다녔다.
그때는 1~2미터 높이쯤은 아무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거침없이 잘 뛰어내렸던 것 같다. 기껏해야 몸무게 2~30KG 나갔을까? 거짓말 좀 보태서 3미터 정도도, 뛰고 나면 발바닥이 찡한 그 느낌이 좋아서, 그냥 뛰어내렸던 것 같다. 회복력도 좋아서, 조금 있으면 찡한 느낌도 금세 사라졌다. 어쩌면 몸무게만큼이나 걱정의 무게도 가벼웠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근심걱정은 전혀 모른 채.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기대만 충족하면 됐던 때이다.
세월이 쌓여서...
아무 데나 걱정 없이 뛰어내리던 추억 속의 소년은 이제 그러려면 늘어난 몸무게에 더해 인생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덜컥 겁부터 내는 아저씨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한 계단만 뛰어내리려고 해도 스트레칭을 하고 워밍업을 해서, 무릎 관절을 보호하고 허리 안 다치게 조심해야 한다. 컥! 계단은 무슨 계단... 가능하면 엘리베이터를 찾는 게 더 현명하다.
그리고 함부로 남의 인생에도 뛰어들지 못한다. 일이 잘 안 풀려 고민이 있는 지인에게 카운슬러를 자청하며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속시원히 털어내라며 시건방을 떨다가 듣게 된 그들의 고민거리. 음~ 처음 몇 번은 내 충고? 훈수? 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그들의 리액션에, 마치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그들의 인생의 무게는, 내가 덜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덜어 주기는커녕, 나중에는 듣는 것만도 부담스럽고 꺼림칙해서, 슬슬 피하다 보니 오히려 서로에게 짐만 될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쌓여 나에게도 스스로 지기 힘든 무게가 짓눌러오며 마음에 병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그들을 피했으면 안 됐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들의 무게. 하지만 만약 설사 나의 건방이었을 뿐일지라도 그들의 무게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옮겨졌다면, 만약 그런 거였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들의 무게가 덜어졌다면...
음... 그것을 확인만 했더라도, 너도 나도 조금은 홀가분해졌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