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 (6)
발작버튼 : 정체성 '~답지 않다.'
-답다
1.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꽃답다.)
2. (일부 명사나 대명사 또는 명사구 뒤에 붙어) ‘특성이나 자격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너답다.)
-같다
1.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나 불완전 어근 뒤에 붙어, ‘그 대상의 속성에 비할 만함’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억척같다.)
소유격 낱말을, 'my, your, his, her~'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적 표현으로 통합해서 사용하는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관계주의'가 발달한 나라라고 한다. 이런 한국인들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발작버튼'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정체성을 의심하는 거다. 한 개인이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너'라는 타인으로 배척되면 '스스로 삶을 포기할까'를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그 파급력은 무시무시하다. 정체성 의심이 개인이 아닌 집단 간에 발생하면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좋게, '열정적인', '뜨거운', '화끈한'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특성을 아주 잘 나타내는 낱말이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답다'이다. '남자답다. 남편답다. 오빠답다.' 보통 강자에게 붙어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만든다. 이와 비슷한데 좀 다른 낱말이 '-같다'이다. '여자 같다. 아내 같다. 동생 같다.' '-답다'와 다르게 주로 약자에게 붙는다. 정확히 말하면 '-답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만들 때, '-같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만들 때 사용된다. 그래서 '-답다'라는 말을 부정하는 '-답지 않다'는 한국인의 발작버튼이 된다.
또한 '-같다'에서 벗어나 '-답다'가 되려는 시도는 어마어마한 저항에 부딪힌다. 즉 약자가 강자가 되려는 시도는 기득권층에게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전통적인 강자들은 이런 시도를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며 본인들의 이권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인간 사회라면 당연한 이치라서 '惡'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서로 대화하지 않고 갈등만 조장될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물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런 갈등의 양상이 강대강의 국면을 띄며 '혐오'만 만연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갈등의 원인 (죄송합니다. 뇌피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갈등을 마주한다. 이러한 갈등의 많은 부분은 스스로가 '정체성'이라는 틀에 얽매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를 때, 이는 곧 내면의 갈등과 외적인 충돌로 이어진다. 정체성은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나치게 그 틀에 갇히게 되면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우리는 자신을 특정 역할이나 규범에 맞추려 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를테면,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부합하려는 압박감 속에서 우리는 본연의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하물며 타인에게 특정 정체성을 강요할 경우에는 심각한 갈등으로 번진다. 젠더 갈등, 이념 갈등, 종교 갈등, 세대 갈등 등... 모든 갈등의 이면에는 '-답다'는 각자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답지 않다'는 발작버튼을 눌러버리면 갈등은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린다.
젠더 갈등의 경우, 남성과 여성 각각의 사회적 역할과 기대가 정체성을 구축하며 갈등을 유발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고정관념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어렵게 만들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성별 역할 분담이나 가정 내의 성 역할 기대 등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성 역할 분담에 대한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이념 갈등 또한 중요한 갈등 요소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 체계가 서로 충돌할 때, 개인의 정체성은 더욱 강하게 발현되며 갈등을 증폭시킨다. 예를 들어,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이나 사회적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정치 관련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념 갈등은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기 어렵게 만든다.
종교 갈등은 종교적 신념과 가르침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유지하고자 할 때, 다른 종교나 종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충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집단 간의 갈등이나, 같은 종교 내에서도 해석 차이로 인한 갈등이 이에 해당한다. 종교 갈등은 특히 감정적으로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
세대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각 세대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종종 다른 세대와의 충돌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젊은 세대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지만, 나이 든 세대는 전통과 안정성을 중시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정체성은 갈등의 근원이 된다. 한국의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그 이후 세대 간의 갈등은 이러한 세대 갈등의 한 예이다.
자기 결정권 : 자발 VS 강제
정체성의 과도한 추구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는 별개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라고 인식하면서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관계주의가 강한 한국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선구자를 필요로 한다. (음... 꼭 필요하다기보다는 해결이 그나마 쉽게 되는 편이다.) 나쁜 관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촉발시킬 최소한의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 결정권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갈등 상황에서도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회적 역할의 변화와 적응이 필요한 시점에서, 갈등을 줄이고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고유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발적인 노예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