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 (7)
그래서 살아있다는 거야? 죽어버렸다는 거야? 좀비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제는 워낙 유명한 사고실험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이 물리학에 확률이라는 불확정성을 도입한 것에 대해 반발해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려 고안된 실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실험으로 더 유명해진 반전이 있는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고양이는 상자 속에서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에 놓인다. 이 상태는 상자를 열어 고양이를 관측하기 전까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실험 목적도 실험 내용도, 모두 뚜껑을 열어보고 나서야 결과가 결정된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하다못해 뉴스를 통해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고인의 사망선고시각과 내가 부고 소식을 듣게 되는 시간에는 분명히 간극이 발생한다. 그럼 그 간극동안 고인은 분명히 내 머릿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확률로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철학적으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즉,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인은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할까?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확산으로 우리는 이제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매체, 신문 기사, 그리고 각 종 글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교양 수준은 분명히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한 정보 속에서, 관측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더 쉽게 느끼게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나면,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참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이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블로그나 SNS에는 효율성이나 효용 극대화를 강조하는 정보가 넘쳐난다. 간단히 말해서 자랑하는 내용이 넘쳐난다. 이것은 악의가 있는 나쁜 행동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천편일률적으로 트렌드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을 참지 못해, '트민남, 트민녀'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트렌드를 쫓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또한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라이프 스타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SNS를 통해 타인의 화려한 삶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그만큼 잘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
게다가 교육열이 어마어마한 한국에서는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와 그에 따른 경쟁이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심화시킨다. 자녀의 성적과 대학 진학이 사회적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러한 경쟁은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가정 내에서도 갈등을 유발한다. 4살 아기가 과외를 받아야 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989212?sid=102
매년 입시철이 되면 유명학원에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든다. 공교육으로는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팽배해서다. 이것도 일종의 특권의식이겠지?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을 결정하는 세상...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다가 망가지는 아이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가정교육 탓하며 혀를 끌끌 차는 댓글... 그러면서 그걸 또 따라 하는 대중... 결국 트렌드로 굳어지는 악순환. 이런 딴 나라 얘기 같은 소식을 듣다 보면, 잘살든 못살든, 요즘 젊은이들이 무력감에 빠져드는 모습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너무 착하다.
민족성인지 기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이런 잘못된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마음을 사회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침략 전쟁을 워낙 많이 겪어서 그런 건가? 개혁, 진보 같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변화를 극렬히 반대한다. 사회의 모순이 심해도, 불합리, 불공정, 차별이 심해도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보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노력해서 그 무리 속에 편입해서 안착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다들 너무 착하다.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모여있다. 아!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자아 찾기', '나다움', '포기' 이런 온화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좀비커밍아웃'처럼 들리는 이런 해결책을 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성격과 기질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다. 트렌드나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다.'
이게 맞아?
요즘 가만히 생각을 하다 보면, 이런 착한 성향이 극단주의나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마도 부처님은 집착을 버리라는 '지혜'와 함께 '자비심'을 큰 가르침으로 내리신 것 같다. 아직 자비심은 나에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제 겨우 조금씩 집착을 끊어내고 있는 수준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자비에 대해서 공부를 좀... 생각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