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팀장이었을 때, 신입사원... 음... 입사한 지 3년이 넘었으니 신입은 아니지... 막내...인데 막내사원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술을 못 먹는 친구인데, 그땐 '내가 제일 잘 나가' 시절이어서 반강제로 술자리를 했다. 팀원들이 코로나 때문에 팀회식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4인 이상 모이면 안 되니까, 나보다 어린 친구들만 나까지 포함해서 3명이 식당에 모이기로 했다. 회포를 풀자는 핑계였다. 처음에는 강제로 먹는 자리 아니니까 알아서 적당히 마시라고 하고 편하게 밥 먹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오랜만에 술자리여서 그랬는지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니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고 2차, 3차를 달리고 있었다. 중간 녀석은 술을 마시면 눈이 풀리면서 변신하는 스타일이고 원래 술자리를 좋아하니 그렇다 치고 웬일로 술 못 먹는 막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중간 녀석이 더 먹다가는 길바닥에 쓰러져 잘 것 같아서 더 마시자는 걸 억지로 달래서 집으로 보내고 나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막내사원에게 맥주 한 잔 더하겠냐고 물었는데 진짜 웬일로 '그러시죠!' 이러는 거다. 그 친구도 글을 좀 쓰는 친구였는데, 전에 보여줬던 자작시에 크게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한번 읽어보자고 하고 술기운에 평론가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대화의 방향이 어린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요즘 계속 어렸을 때 내가 잘못한 것들이 생각이 난다?"
"어! 팀장님도 그러세요?"
"어, 중학교 때 주먹다짐하며 싸웠는데 내가 비겁하게 등을 돌린 거 있지. 그때 도망갔던 기억이 자꾸 생각나면서 치욕스러웠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너무 괴로워. 회사에서 회의시간마다 갈굼을 당하니까 또 비겁하게 등 돌려서 도망가고 싶어 져서 그런가?"
"우와 저도 그런데... 옛날 생각이 나서 너무 괴로워요. 이불킥을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사실 중학교 때, 학폭까지는 아니었지만 괴롭힘 조금 당했거든... 내가 강하게 거부하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는 착한 사람 강박이 있었는지... 그냥 당하기만 하고 참았거든..."
"아... 저도 어렸을 때 제가 잘못했던 일이 계속 생각이 나서 요즘 잠도 못 자고 미치겠어요."
그때 알았다. 나만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쐐기처럼 가슴에 박혀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학교폭력피해자가 복수를 하는 드라마가 인기인 것 같다. 나는 학교폭력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본다. 그때의 바보 같던 내가 떠올라서 많이 불편하다. 화면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린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애써 잊은 줄 알았는데 다시 상기시키는 상황이 너무 싫다. 왜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계속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 뉴스나 신문기사로 볼 것을 왜 자꾸 상황극을 넣어서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키는지 모르겠다. 가해자들이 드라마를 보면 반성을 할까?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할까? 그렇다면 30년 전과 지금은 크게 달라져있어야 한다. 영상매체와 드라마는 좋은 얘기만 만들어야 한다. 희망적이어야 한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자극적인 소재로 돈을 벌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부조리극은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그냥 소설로 남겨뒀으면 좋겠다. 마흔 중반이 넘어가는 데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치 고문 같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마음 여기저기에 쐐기를 박아놨다. 그래서 아이의 훈육에 '사랑의 매'는 절대금지다. 내 인생 최초이자 희대의 망언, '사랑의 매.' 아직도 방 안에서 문이 잠긴 채 도망갈 곳도 없이 구석에 몰려 잘못했다고 빌면서 엄마에게 사정없이 온몸에 매 맞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집은 아직도 근처에도 가기 싫다. 그 집에서의 추억은 악몽으로 변했다. 초등학교 때 정신교육을 시킨다며 운동장 뙤약볕 아래에서 아이들에게 제식훈련을 시켰던 선생님.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가!' 그 선생님은 나무그늘아래에 앉아있었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구토를 하고 말았는데 그 뒤로 엄마가 학교로 불려 와 '애가 체력이 많이 약해서 나중에 대학입시공부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촌지를 건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난 생활기록부를 믿지 않는다. 그 뒤로도 친구 간에도, 선후배 간에도, 상사와 부하 간에도, 심지어 가족 간에도... 즉 지금까지도 마음에는 계속 쐐기가 박힌다. 물론 지금은 어릴 때에 비하면 마음이 많이 커져서 저런 정도의 쐐기는 금방 뽑힌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쐐기는 도덕심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법을 잘 지키고 사회에서 조화롭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니 그냥 흘려보낸 것을 시장논리로 계속 자극해서 다시 끄집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포리즘이라고 할까? 좋은 말들이 많다. 그중에 '원수를 사랑하라.' 아! 이건 성경구절인가... 어쨌든 용서, 화해, 사랑에 관련된 많은 명언들을 되새기면서 과거의 아픔을 가슴속에 박아두고 하루하루를 살지만 사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좀 그렇다. 나는 글을 쓰다 보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무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안 그렇더라, 남아 있더라. 너튜브에서 글쓰기 관련 영상을 보다가 어느 작가님이 그랬다. 글쓰기 잘하려면 솔직해져야 한다고... 글쓰기 강좌를 나가보면 '이런저런 나쁜 사람들 때문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인생살이가 어려워졌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고... 그래서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쓰다가 이상하게 글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됐냐고 물으면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니오.'라고 한단다. 그러면 왜 그렇게 쓰셨어요 물어보면 왠지 글은 그렇게 끝맺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단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더라. 글을 쓰며 치유되는 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감히 글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윤동주의 시 속에 외딴 우물 속에 그 사나이가 딱 지금의 나인데… 속으로는 아직도 길에서 마주치면 어쩌지를 걱정하면서 용서된 척, 이해된 척 메모해 놓았다. 얼른 발행글을 살펴봤는데 다행히 아직 발행한 글에는 그런 흔적이 안 보인다. 나라는 인간이 아직 덜 성숙해진 걸 수도 있다. 요즘 제일 싫은 속담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이다. 난 아직 용서할 준비가 안 됐고 용서할 생각도 없다. 이해도 안 된다. 나에게 상처 준 모든 것이 밉다. 이것이 진심이다. 스스로 마음의 쐐기를 뽑아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중에 하나가 책이다. 그래서 독서를 좋아한다. 상상을 좋아한다. 이렇게 천천히 혼자서 삭이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해결방법인 것 같다. 이러다 보면 죽기 전에는 치유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불교 철학에 빠져있다. 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무상이라고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 모든 것이 업보이고 번뇌라고 한다. 인생은 무상이라서 다 부질없다고 한다. 더 공부를 해봐야겠지만, 인도 철학 중에 이 가르침을 발전시키다가 허무주의로 빠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의 불교 철학은 허무주의는 아닌 것 같다. 자비라는 개념 때문인데, 이것은 희생, 용서, 인내의 의미가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그런데 나는 안 그럴 거야'로 이해했다. 이런 자비심으로 업보와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간의 관념까지 초월한다고 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생각할수록 내 고민들이 부질없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부처님이 돼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