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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은 놀이터 울타리다.

저작권은 권력이다. (6)

by 철없는박영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은 지켜져야 한다.


한때 어린이들은 골목길을 차지하고 뛰어놀았다. 어른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넓었지만,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좁고 위험한 길바닥뿐이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피하며, 철조망과 유리조각을 피해 약한 몸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어린 시절. 어른이 되고 나면 그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지만, 당시에는 생존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울타리 있는 놀이터가 생겨났다. 아이들은 더 이상 위험한 골목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울 필요 없이, 자유롭게 뛰놀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저작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호 장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본화되고, 기업화되고, 산업화되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창작을 잠식할 때,


산업화 초기에는 아동 노동 착취가 흔한 일이었다. 인간이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로만 인정받던 시기다. 다산이 당연했고, 농경사회 중심의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시절이다. 당연히 값싸고 약자였던 아이들은 생산력을 착취당했고, 사회적 보호 장치 없이 자본의 논리에 휩싸였다.


저작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작물이 돈이 되면서 점점 더 기업의 지배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한때 어린이들 장래희망 1위가 '유튜버'였을 정도로, 개인들이 자유롭게 창의력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유튜브 채널을 보자. 처음에는 개인이 방송을 하면서, 자기만의 표현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콘텐츠 제작이 기업화되었고, 앞광고 뒷광고 논란을 지나, 지금은 연예인들이 부업으로 운영하는 홍보용 광고 콘텐츠로 넘쳐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각 종 선동을 조장하는 정치 채널로 완전히 몰락했다.


유튜브는 자유로운 제작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양산형 콘텐츠의 홍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마트와 전통시장의 관계처럼 기업형 제작사가 콘텐츠를 관리하고, 자본이 창작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중파 방송국에서 밀려난, 혹은 자발적으로 물러난 전문 인력까지 대거 영입되며, 개인 창작자들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버린 것이다.


진짜 약자를 보호하는 저작권


저작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더 이상 기업이 창작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진짜 약자인 개인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저작권이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 창작의 가치는 자본에 의해 조정된다. 콘텐츠는 상품이 되고, 표현의 자유는 시장 논리에 의해 제한된다. 저작권이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개인 창작자들은 기업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창작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표현의 총체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저작권을 지켜야 할까? 자본이 아닌, 창작자를 위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저작권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놀이터가 없으면 아이들은 골목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이 없으면 창작은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갇히고 만다. 저작권은 단순한 법적 보호를 넘어서야 한다. 창작자를 위한 진짜 보호 장치로 작동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창조적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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