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회의는 항상 밤에 열린다. (3)
발단
앞선 글에서 성인이 된 후 겪은 몇 가지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이번 글을 구상하며 생각을 쥐어짜 내던 중에 툭 튀어나온 기억들이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더 깊은 곳에서 튀어나온 기억. 사실 잊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는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잊고 사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이야기가 내 성격 형성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 식사와 청문회
조카의 생일이 있던 주말,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이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불필요한 잡념은 버리고 좋은 마음만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친구가 추천해 준 일자리가 있었는데, 운이 맞지 않아서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간섭이 시작됐다.
처음엔 단순한 의견 제시였다. 걱정하는 마음일 수도 있었다. 좋은 의도만 남기고, 불필요한 감정을 정리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점점 변해갔다. 질문이 반복되고, 설명해도 납득하지 않는 기류가 감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대화는 청문회가 되어 있었다.
나는 대답해야 했고, 해명해야 했고, 변명해야 했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그냥 두면 될 것을...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결국 그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가 나왔다.
"난 이렇게 안 키웠는데, 왜 저렇게 예민해졌는지 몰라...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살래?"
순간, 몸이 뜨거워졌다. 심장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밤의 대책 회의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한밤의 대책 회의가 열렸다.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가 모였고, 불안, 부럽, 따분, 당황, 추억까지 새로운 감정들도 합류했다. 우선 "나는 왜 예민한가?"에 대한 원인 분석이 시작됐다. 결론은 간단했다.
'억울한 일이 많아서... 그리고 그 억울한 일의 가해자들은 기억조차 못해서...'
어릴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만 잘하면 돼! 내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우월하게 더 잘하면 돼!"
"큰 사람이 돼야지."
하지만 힘에 부쳤다. 그래서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다 결국, 그마저도 막히면서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좀 나와야겠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제는 남 탓을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
올바른 'ㅎ'
유치원에서 처음 한글을 배웠다. 반투명하게 그려진 글자를 따라 그리는 교재가 있었고, 매일 깍두기공책에 한 페이지씩 쓰는 숙제가 나왔다. 그날도 연필을 잡고,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ㅎ'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다가왔다.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하냐."
"꼭지를 이렇게 세우는 게 아니고 눕혀서 써야지..."
나는 유치원에서 배운 방식대로 쓰고 있었고, 그게 맞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틀렸다고 말했다. 나는 반발했다. 6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고집을 피우고 떼쓰고 우겼다. 왜냐하면, 그 방식이 맞다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돌아온 것은 엄마의 매질이었다. 고집만 세다고 했다. 그렇게 고집세서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고 했다. 그날 나는 매를 맞으며 끝까지 우겼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ㅎ'을 쓰는 방식이 바뀌었다. 꼭지를 45도 각도로 기울여 쓰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해진 걸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민하게 하나하나 캐치해서 손해 보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눈치를 보게 된 걸까? 이 질문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왔다'
결국,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해 주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당신! 당신이나 똑바로 살아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라.'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