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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 나는 진짜 예민한가?

대책 회의는 항상 밤에 열린다. (4)

by 철없는박영감
이야기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보다 넓은 시각으로 표현하자면 '이야기의 힘'이라 하겠다. 지금이야 사극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한때 대하사극은 흥행 보증수표였다. 방송사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해 매년 1~2편의 사극을 방영했고, 각 방송사의 특색이 뚜렷했다. KBS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냈다면, MBC는 허구가 가미된 역사 소설 같은 색채가 강했다. SBS는 두 방송사보다는 아무래도 신생 방송사이다 보니 시청률 때문에라도 궁중 암투 같은 치정극 스타일이 강했다.


정리하자면 KBS는 남성적인 논리적 접근, MBC는 감성적인 이야기, SBS는 자극적인 전개가 특징이었다. 가장 잘 맞았던 것은 MBC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작이 바로 이병훈 감독의 '대장금'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 신드롬을 일으켰고,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명장면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라간 최고상궁을 선발하는 밥 짓기 경합장면이다. 한상궁이 준비한 개인 맞춤형 밥 짓기, '먹는 사람에게 맞춰야 진짜 좋은 음식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요리 대결을 넘어, 배려와 개인화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https://youtube.com/shorts/ovD23Q1YSdw?si=_rRuqxZZoSshObRg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고, 이렇게 잘 이해하고, 과하지 않게 맞춰준다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사회에 무속과 점이 번창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 무속의 특징은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고, 현재를 해석하는 것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보듬어주는 멘털케어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나는 차별화되고 싶었다


우리는 흔히 '틀림이 아니고, 다름이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쉽게 '차별'을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는 나만의 차별화를 갖기보다 차별받는 위치에 있었다. 첫째다 보니 '미안해 나도 부모는 처음이라서...' 버프를 이용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음... 가족 내에서 만들어진 역할은 타인의 시선보다 더 강력한 굴레가 된다.


엄마는 동생을 임신했을 때 아버지와의 불화로 태교를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어린 나에게도 전가되었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형이 부모 대신이다."

"형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나는 두 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 동생에게, 뭔지도 모르는 '부모의 역할'을 강요받았다. 특히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 동생을 위해 먹거리는 언제나 동생 중심으로 꾸려졌다.


억지로 먹었던 기억


지금이면 모델 같은 몸매로 각광받았을 동생도, 당시에는 '마른 몸은 대접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육체적 풍요로움을 중시하던 시대! 못 먹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곰 같은 남성상을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첫째라는 온갖 관심과 애정을 받으며 태어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씩은 컸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미뤄졌다. 우선 급한 것은 동생을 살찌우는 것이니까.


특히 애호박을 볶아 밥에 비벼주면 동생이 잘 먹었는데, 나는 그 맛이 너무 달아서 두통이 올 정도로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헛구역질을 하는데도, 엄마는 "먹기 싫어서 쇼하는 것"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때 억지로 먹었던 음식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너무 건강한 것도 문제인 건가?


요즘 들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예전에 몰랐던 알레르기 반응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어릴 때는 잘 먹었는데, 왜 이렇게 예민해졌지?'라고 한다. 그리고 내 몸의 변화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점점 깨닫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못 먹는 것이 많았고, 이제야 그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breed가 아니라 raise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형제가 많아 없는 것이 많은 시대를 지나왔다. 그렇기에 가리지 않고 먹고, 그냥 버텨야 했던 환경이 익숙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자식세대도 부모세대와 똑같았어야 할까? 나는 breed(번식)되고 싶지 않았다. raise(길러지길) 원했다. 차별이 아니라, 차별화되길 원했다. 존중받으며, 나라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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