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회의는 항상 밤에 열린다. (5)
이기적 유전자
낮 시간이 제법 더워졌다. 여름이 오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보양식을 찾는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24 절기 외로 삼복을 따로 정해놓고 건강을 챙겼다. 이날은, 요즘은 좀 덜하지만, 대놓고 가축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흔했다. "복날에 개 패듯이 맞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 나는 실제로 그런 날을 경험했다. 그리고 가해자는 엄마였다. 잊을 수 없는 나의 복날. 우리 가족은 한때 사택에서 살았다. 그 동네는 내게 애증의 장소다. 가끔 꿈속에 나타나고, 차로 지나다가 보면 이제는 완전히 개발되어 전부 변해버린 곳. 차로 지나갈 수는 있지만, 내려서 공기와 경치를 느끼기엔 공포로 다가오는 곳.
그날, 사택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동생이 그 철조망을 넘다가 바지가 걸려 꼭대기에 매달린 채 꼼짝 못 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엄마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는 집 안으로 끌려가 복날의 개처럼 매를 맞았다. 엄마 손에 강제로 끌려갔고, 그날 집안의 무거운 공기, 어둑한 밝기, 그리고 방 한구석에 몰려 사정없이 매질을 당하며 비명을 지르던 내가 박제된 곳이다.
엄마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고 돌아가 있었다.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엄마를 좋아할 수 없다. 믿었던 주인에게 끌려가서 죽는 가축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죄책감과 자학
이 사건은 제대로 기억을 못 했을 정도로 한동안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어떤 정신적 프로세스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동생을 못 본 척했을까?"
"난 왜 이렇게 못돼 먹었지?"
"와~! 나 정말 나쁜 놈이구나..."
스스로를 자학했고, 자기 비하에 빠졌다. 하지만 최근, 엄마의 생신날 또 다른 사건을 겪으며, 이 기억이 다시 복원(재구성) 되었다.
되살아난 기억
엄마의 생일이 끼어있는 주말, 역시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건강 문제로 아무거나 먹을 수 없었고,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조카들과 제수씨는 더 맛있는 외식을 기대했을 텐데,
"나 때문에..."
"또 나 때문에..."
미안해진 나는 디저트라도 좋은 곳에서 사줘야겠다 생각하며 근처 드라이브 코스에 새로 생긴 대형 베이커리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서 쭈뼛쭈뼛하는 조카를 보며, 동생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쟤는 겁쟁이야!"
그리고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왜 못 본 척했을까? 그날 나는 철조망을 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자기는 넘을 수 있다며 자랑하듯, 나를 겁쟁이라고 심하게 놀리며 철조망을 올랐다. 그리고 철조망 꼭대기에서 바지가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나는 처음엔 모른 척했다. 주변 친구들이 '동생 구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지만, '냅둬!'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고소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그가 곤경에 처한 게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가 나타났다.
그렇게 벌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엄마는 그날 내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내 손목을 붙잡고 집으로 끌고 가버렸다. 그날 이후, 그 사택은 내게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차라리 도살장 같은 느낌이었다. 한동안 개 패듯 맞은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사건의 이면이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재구성됐다.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
조카는 어려서 모르지만 만약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이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고, 어딘가로 죽으러 끌려가는 기분을 느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가 우리 OO이 놀리는 게 재밌어서, 반응이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상처받지 마!'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엄마의 눈빛이 바뀌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러지? 내가 잘못한 건가?' 그래서 이유를 물었다. 괜히 동생이 '너네 형도 그러던데'라며 부부싸움할 때 제수씨에게 책 잡힐 빌미를 준다며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면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음... 그렇구나...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설사 알아도 모른다고 하겠구나. 손자가 저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될지 보다, 자기 아들이 며느리에게 책잡힐까 봐 걱정되는 게 더 중요하구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말은 갖고 있지 말고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흘리고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