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 자기 파괴

대책 회의는 항상 밤에 열린다. (6)

by 철없는박영감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단편,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각인


어떤 기억은 사람을 따라다닌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감정의 흔적이 된다. 나는 그 순간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은 매번 매 맞은 기억과 연결된다. 누군가는 이것을 교육 또는 훈육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폭력이라고 부른다.


기억 속의 폭력


어릴 때, 매 맞는 순간들 중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은 무엇일까? 적어도 단순히 내가 맞는 순간의 통증은 아니었다. 통증은 사라지니까. 진짜 공포는, 가해자가 자기 자신을 때리던 순간이었다. 엄마는 나를 때리던 도구로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장면은 너무 끔찍해서, 나는 내가 맞을 때 보다 더 자지러지게 오열하며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건 훈육이 아니었다. 그건 분풀이였다. 아니, 감정의 폭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 광기 어린 기세를 받아낼 수 없었다.


왜곡된 죄책감


아이가 맞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게 과거 한국식 '사랑의 매'라고 불리던 훈육방식의 특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폭력을 당한 건 나인데, 왜 나는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체벌을 받고 나도 후련하게 용서받지 못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나를 코너에 더 몰아넣게 되는...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이다. 나는 남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나 때문에 엄마가 아프다."


"나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화가 났다."


이 사고방식은 지금도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상처받거나 아프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늘 양보하고, 늘 나를 낮춘다. 하지만 부처가 아닌 이상,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그렇게 살아지는가?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내 행동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탓하며 나를 파괴한다.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반복되는 기억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단편이,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각인이다."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날 엄마가 자기 머리를 내리치던 순간. 그리고 나는 또 반복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을 반성했다. 하지만 그 반성은 건강한 반성이 아니었다. 그건 자기 비하, 자기 책망이었다. 전부 자기 탓이었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연약하다"라고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만 그런 거냐? 누구나 다 그런 거지? 너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아." 아마 가볍게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리라고 일부러 더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다. 나도 다 말해준 것은 아니니까.


이제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훈육인가? 이것이 정말 사랑의 방식인가? 아이는 맞으면서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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