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꾸미잖아,

나는 한 번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던데…

by 철없는박영감

거울을 본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앞머리를 앞으로 내렸다가 가르마도 타봤다가... 가르마도 5:5를 했다가 3:7, 2:8... 큰 차이도 안 나는데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만지며 애쓰고 있다. 게다가 머리를 아무리 빗어도 꼬불꼬불하다. 곱슬머리라도 한 방향으로 꼬였으면 머릿결이라도 좋아 보일 텐데. 머리카락들이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빗자루 같다. 이번에는 올백을 해본다. 뒤로 확 젖혀서 이마를 까니까 머릿결이 좀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내 머리카락들이 다시 벌떡 일어서며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서 따져 물으려고 안방문을 열어젖힌다.


"머리스타일 그렇게 하니까 얼굴이 주먹만 해 보인다. 우리 아들 잘생겼네..."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30년 전 이야기이다. 이 짓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스포츠머리로 머리를 확 밀어버리고 나서야 끝났다. 내가 중학교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교복도 아니고, 등굣길이 멀어져서도 아니고, 남중이어서도 아니다. 스포츠머리 때문이다. 이 때는 미용실에 가서도 어떻게 깎아줄까를 물어보면 그냥 대충 깎아주세요라고 했다. 머리스타일에서 관심사가 멀어지니 이번에는 여드름이 문제다. 양쪽 새끼손가락으로 손거울을 잡고 검지 손가락으로 여드름을 짠다.


거울을 본다.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명동에 나와서 옷을 사는 것 같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더 심해졌다. 교복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산 옷들이 점점 늘어난다. 지난주에 못 샀던 옷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20년 전 이야기이다. 이미 명동의 옷가게 위치를 구석구석 다 파악하고 있다. 'NAUTICA'는 must-have 아이템이다. 요즘 노스페이스 같다. 옷 좀 입는다 하면 'ROOTS CANADA', ‘MAJAH FLAVAH', 'Tommy Hilfiger'이다. 명동 밀리오레에서 출발해서 롯데백화점에서 쇼핑을 끝낸다. 거울을 보며 이 옷, 저 옷 몸에 대본다. 힙합스타일의 펑퍼짐한 옷들은 몸매가 안 좋아도 충분히 멋을 낼 수 있다.


거울을 본다. 한숨을 푹 쉰다. 살이 언제 이렇게 쪘지? 아무리 큰 셔츠를 사도 가슴이 꽉 낀다. 바지는 고무줄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편하게 입을 수 없다. 치약은 이제 바닥에 안 떨어진다. 배에 떨어진다. 10년 전 이야기이다. 그래도 샤워를 하고 나면 잠깐이나마 촉촉한 거울 사이로 잘생겨 보일 때가 있다. 욕실에서 문 닫아 놓고 몸 여기저기 힘을 줘본다. 아직 팔뚝에 이두박근은 봐줄 만하다. 엉덩이도 살인지 근육인지는 몰라도 보기에는 탱탱하다. 몸짱이 되겠다는 결심과 함께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닭가슴살을 주문한다.


거울을 본다. 깜짝 놀란다. 눈밑은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내려갈 기세이다. 팔자 주름 때문에 인상도 못돼 보인다. 머리는 또 언제 이렇게 빠졌는지... 바로 각종 영양크림을 사고, 경락마사지 샵을 등록한다. 탈모에 좋다는 검은콩을 사고 각종 트리트먼트 샴푸를 산다. 1년 전 이야기이다. 그래도 아침마다 마스크 팩을 올리고, 면도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니 좀 화사해졌다. 경락마사지를 좀 받았더니 얼굴도 작아지고 주름도 많이 펴졌다. 그렇게 싫었던 곱슬머리는 머리숱 많아 보이라고 도리어 돈을 주고 파마를 한다.


거울을 안 본다. 세수를 안 해도, 면도를 안 해도, 마스크를 써서 아무도 모른다. 그냥 외출할 수 있다. 회사를 관두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면서 머리도 덜 빠진다. 기타를 새로 배우면서 활력이 생기고 웃음이 많아지니 주름도 예쁘게 자리 잡았다.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살도 빠지고, 괴롭히던 각종 건강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책을 읽으며 철학을 키운다. 그때그때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찾는다. 치열하게 심연으로 파고들어 찾는다.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철학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그럼 또 치열하게 파고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노력해서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나는 한 번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다. 10대 때는 머리스타일이, 20대 때는 패션이, 30대 때는 몸짱이, 얼마 전까지는 동안이 내 철학이었다. 이제는 마음에 거울을 비춰본다. 마음속 여기저기를 비춰보면서 예쁘게 꾸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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