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음
아침은 항상 상쾌해야 할 것 같다. TV화면 속에 행복한 사람들은, 밝은 햇살 사이로 시폰 커튼이 흩날리는 온통 하얗게 인테리어 된 집안 창가에 서서 홈웨어차림으로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아침을 예찬한다. 행복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흐린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안개 낀 날도 있는데... 아침마다 상쾌를 강요한다는 느낌이다. '활기찬 하루를 위해', '에너지 넘치는 당신' 이런 류의 광고카피가 대형 전광판이나 버스 광고판에 보일 때는 그 속에서 웃고 있는 모델의 이빨을 새까맣게 칠하는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왜 이렇게 어깨가 축 처져 있냐고 걱정하신다. 아닌데... 방금 잠에서 깬 것뿐인데... 벌떡 벌떡 일어나서 아침조깅이라도 다녀와야 좋아하시려나? 어제 읽던 책은 선택에 관한 내용이었다. 경로가 이미 정해진 삶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 어느 삶이 더 좋은가를 고민한 내용이었다. 그 고민을 당장 다음날 아침에 경험할 줄이야. 아침에 좀 우울하고 가라앉아 있을 수 있잖아? 내 선택이잖아?
이유 없이 슬프고 눈물 날 때가 있다. 대부분 잘 숨기지만, 가끔씩 들킬 때가 있다. 발견한 사람은 왜 우냐며... 무슨 일 있냐며... 우는 이유를 묻는다. 진정 별 일 아니기에, 아니라고... 별일 없다고... 그냥 갑자기 조금 슬퍼졌을 뿐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유를 더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슨 일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그러면 점점 더 대답을 강요하는 듯하다. 굳이 뜬금없이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캐보자면, 슬플 때는 애처로운 선율을 듣다가 이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나, 연주한 사람의 감수성이 전달돼서 음악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음악 속의 슬픔, 고뇌, 혼란이 공감될 때이다. 그러면 눈물이 난다. 펑펑 우는 게 아니고 눈가에 그렁그렁 고인진다. 그런 날은 시를 쓰고 싶어 지는 날이다.
어떤 날은 안도감 때문에 그렇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상념과 고민들이 책을 읽다가 또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다가 갑자기 알아서 마음속에서 해결될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도감이 들면서 억지로 붙들고 있던 어깨가 축 늘어지며 그동안 마음고생하느라 힘들었다고 스스로 토닥이며 연민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우울할 때는, 흐린 날이 대체로 우울했던 것 같은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특히 그랬다. 그럴 때는 부모님도 나 때문에 하기 싫은 거 다 해내고 사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하다 못해 애잔해져서 눈물이 난다.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어떻게 다 설명하냐고... 몰래 눈물 흘리고 있으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가면 되지... 혼자 감성에 젖어서 눈물 좀 흘릴 수 있잖아? 내 선택이잖아?
사는 것은 힘들다. 진짜 힘들다. 그리고 누구나 다 힘들다. 그래도 가끔씩 마음이 잠시 쉬었다 가라는 듯이 가라앉음을 선물할 때가 있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그 안에 불순물들이 서서히 가라앉아 맑은 물만 남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내 속에 맑음만 남은 듯 차분해지고, 초월한 듯하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그런 선물 같은 날이 올 때가 있다. 그런 가라앉음은 내가 조급하고 잘못된 선택만 하고 있으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강제로 시키는 것 같다. 좀 쉬었다 하라고... 그러고 보니 이건 강제인가? 또다시 어제 읽던 책의 내용이 고민된다. 선택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가? 취준생 때, 앞으로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 나는 가업을 이뤄서 내 후손들은 취직걱정 안 하고 가업을 이어가며 살 수 있게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삶은 행복할까? 둘을 절묘하게 섞어야 하나? 이것도 다 선택인가? 오늘은 마음이 ‘가라앉음’이라는 선물을 준 날이니까 생각을 많이 해도 된다.
오늘은 그런 아침이다. 이유 없이 슬프고 눈물 나는 날... 연민이 가득한 날... 불순물이 가라앉아 맑은 마음으로 깨끗한 시선을 갖게 된 날... 이런 날은 시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