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폭발의 시대... 나는 점점 불안해지던데...

에세이의 범람

by 철없는박영감

이른 새벽시간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나도 이렇게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항상 드는 생각이 요즘 에세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서점에 잘 안 가게 되는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스트셀러라고 진열되어 있는 책들이 제목으로 나를 유혹한다는 느낌이 강해서다. 책도 상품이다 보니 이목을 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목이 열 일하는 책들이 많다. 제목에 혹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삽화가 들어간 칼라지에 불그스름하고 흐리멍덩한 글씨를 중간중간 넣는 것이 요즘 책 디자인 트렌드인가 보다.’라는 사실만 깨닫고 책을 내려놓는다. 글간격은 왜 이렇게 넓으며, 어릴 때 교과서 모서리에 그림 그려서 주르륵 넘기며 만화영화처럼 보던 생각이 자꾸 난다.


에세이가 인기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경험들이 책으로, 글로 공감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해봤다. 아! 너는 그렇니? 그럼 내 경험은 어때? 나는 저런 경험을 해봤어.’ 이렇게 카페에 앉아서 편하게 대화하듯이 책과 교감을 한다. 여러 경험들을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은 독서애호가로서 매우 좋아하는 일이다. 어떤 경험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고, 생각을 발전시키면 어떤 사람이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얘기가 되니 나같이 잠시 쉬는 인생길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불안함은 가시지 않는다. 주변사람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고 걱정할 정도다. 운전대를 손에서 놓은 지 한참 됐다. 마트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야 할 경우를 빼고는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대부분은 동네 마트에서 조금씩 산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것도 있고, 냉장고에 많이 보관했다가 버려지는 식재료를 보며 환경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이런 걱정이야 지구를 위하는 좋은 걱정이지만, 운전을 안 하는 것은, 솔직히 못하는 거다. 두렵고 불안하다. 특히 고속도로는 마치 전쟁터를 나가는 것 같다. TV에서 나오는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면 여기저기서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특히 화물차 판스프링이 제일 무섭다. 마주 오는 차로의 공중에서 뭔가 휙휙 날아오더니 그대로 앞유리창을 뚫고 운전석으로 들어오는 영상을 봤다. 더 안 봐도 운전자는 즉사다. 고소도로에서 앞차보다 마주 오는 화물차들이 더 신경 쓰이는 이유다. 육아솔루션 프로그램에서 어른보다 더 심한 정신병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점점 더 결혼하기 싫어진다. 물론 자발적 비혼주의자가 먼저 됐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혼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브런치에도 인기순위에 이혼 얘기들이 계속 상위권에 오르니, 작가들이 앱의 ‘브런치나우’를 되살려달라는 호소글들이 줄을 지어 올라왔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것은 인간존중의식이 성숙해지고 있는 좋은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 요즘 들어 동아시아에 불어오는 전쟁 위기설 때문에 점점 불안해진다. 다양성 존중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최악의 사건이 세계대전이라고 한다. 정말 모르겠다. 무엇이 진짜 좋은 세상인지... 나의 이 불안함이 혼자만의 불안함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하철 경로우대석에 앉아있는 이상한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뉴스에서 나오는 각종 강력범죄는 때려잡아야 정신 차린다고 한다. 군부시대의 ‘삼청교육대‘가 부활해야 한다고 까지 얘기한다. 어릴 때,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아침마다 뉴스에는 조직폭력배들이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이 방송됐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있는 모습과 칼, 몽둥이, 쇠파이프까지... 나는 악당들이 사라져서 좋은 세상이 됐다고 좋아했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일진’이라는, 조폭아저씨들의 비호를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선생님도 겁내지 않는 아이들... 아니 폭력이 자랑스러운 무용담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수업시간 중에 갑자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한 아이가 선생님의 훈계를 듣기 싫다며 주먹으로 유리창을 쳐서 깨버린 사건이었다.


에세이가 범람하는 시대. 개인적이지만 힘든 일을 극복한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건방진 생각일까? 나한테 그럴 자격이나 힘이 있을까? 글 뒤에 숨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이것도 쓸데없는 걱정인가? 오늘도 불안함을 껴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카르페디엠이 등 돌리고 서있는 날이다. 빨리 꽃피는 봄이라도 와라. 제발! 보일러라도 끄고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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