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의 서사 (7)
자유를 악이라 부르던 시대
우리는 악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누군가를 ‘악하다’고 부를 때,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그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선언인가. 악의 서사를 넘어서 이제 우리는 기준의 서사를 바라봐야 할 시점에 있다. 악을 만드는 것은 때로 행위가 아니라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안정과 질서를 위해 기준을 만든다. 기준은 도덕의 형태를 띠고, 도덕은 곧 윤리가 된다. 그러나 기준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점에서 설정된다. 기준을 만드는 자는 스스로를 윤리의 수호자로 여기지만, 그 기준이 어떤 존재를 악으로 규정할 때, 그 규정은 누구의 책임인가. 기준은 윤리일 수도 있지만, 권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타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기준에 속하지 않는 자유는 종종 악이라 불린다.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자, 기존의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자, 낯선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 이들은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악의 서사 속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그들은 악하지 않다. 그들은 단지 자유롭다. 그 자유는 기존의 질서를 흔들 수 있다. 그 흔들림은 불편하고, 위협적이고, 때로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고정된 기준이 감추고 있던 윤리적 허점을 보게 된다.
기준의 변화와 윤리적 공황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역사 속의 ‘선함’은 시대가 변하면서 ‘악함’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기준에 따라 살아온 이들이 오늘의 기준 앞에서 죄인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윤리적 공황이다. 기준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한 기준을 갈망한다. 그 갈망은 전체주의적 질서로 이어질 수도 있고, 혹은 자유로운 공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준은 질문받아야 한다. 기준을 물어야 윤리가 태어난다. 기준에 반하는 자는 악을 품은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품은 존재다. 그가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기준이 윤리인지, 권력인지 묻게 된다. 자유는 기준을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윤리적 사유는 다시 시작된다. 악은 기준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준의 절대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기준은 누구의 것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