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에서 제일 어려운 건 철학자 이름이던데...

철학과 인연 다시 만들기

by 철없는박영감

도서관을 보물창고처럼 이용하게 되고 시간이 꽤 지났다. 처음에는 집에서 신문을 받아보다가 도서관에도 신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집의 신문을 끊고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한국경제,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이렇게 세 가지 신문이 나의 루틴이다. 한국경제는 읽을만한 기사도 많고 사설도 매우 좋다. 그래서 제일 첫 번째로 본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로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알고 싶어서 읽는다. 신문 한 달 구독료가 2만 원 정도 하니까 매달 6만 원의 돈을 아끼고 있는 셈이다. 도서관은 진짜 보물창고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신문뿐만 아니라 철학서를 찾아 읽는다. 처음에는 신간 에세이나 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매일 한 권씩 읽다 보니 눈에 띄는 책이 더 없기도 하고, 요즘 출판되는 에세이들이 글간격이 넓다고 할까? 한두 시간이면 다 읽고, 소설도 크게 차이가 없어서 5~6시간이면 한 권을 다 읽는다. 그래서 점점 더 읽을거리가 없어진다. 그래도 요즘은 다시 읽기를 하기는 하는데, 이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어야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계속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손을 뻗친 것이 철학책이다. 요즘 글을 쓰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철학공부가 글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추천도 있었기 때문에 생각도 넓힐 겸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도서관은 이제 보물섬이 되었다. 온갖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있는 곳, 이해하지 못한 생각들이 모여있는 곳,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각들이 모여있는 곳이 도서관이었다.

처음 접한 책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을 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 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이라는 책에서 잠깐 언급된 책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에 대출을 했다. 이 책은 처음 접하는 철학서이기도 하고, 이렇게 두꺼운 책은 전공서적 외에는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가볍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 내 선택과 잘 맞아떨어지는 책을 운 좋게 만났다. 이 책은 내용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략 2~30% 정도 이해했을까? 그런데 신기한 점은 이해가 안 되는데도 술술 읽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영감이 떠올랐다. 아마 읽는 동안 잡생각이 많아져서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눈으로는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는 어마어마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판타지 영화를 찍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눈과 뇌가 따로 놀지만 동시에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의미의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많은 영감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책은 소장하려고 한다. 생각이 멈췄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접한 책은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이다. 첫 번째 책이 불교의 '선'과 관련되기도 했고, 모태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반야심경'을 뜻도 모르고 외우고 다녔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결과적으로 내가 외우는 반야심경은 뜻이 없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때 팝송을 부르겠다고 한글로 가사를 적어서 외웠던 것처럼, 인도어를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 현재 내가 외우고 있는 반야심경이었다. 대학교 교양강좌로 한문을 배우고 한자로 적힌 반야심경을 해석해 보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반야심경을 해석해 놓은 책이었다. 반야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내용으로 처음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시작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외웠는데... 저게 제목이었다.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어렸을 때 어두운 길을 혼자 걸을 때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서 '부처님 귀신을 물리쳐주세요'라는 생각으로 외우고 다녔는데... 이제는 뜻까지 알아버렸으니 난 천하무적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잠을 잘 자고 있다. 우울한 병도 있고 건강도 안 좋아서 밤잠을 자주 설쳤었다. 특히 자려고 불을 끄면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어둠이 날 집어삼키는 기분 때문에 계속 불을 켜놓으니 잠을 잘 잘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어둠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도리어 잠깐의 어둠뒤에... 어둠이 익숙해지고 난 뒤에 볼 수 있는 차분한 밤의 시야가 전등의 흔들리는 불빛 보다 더 따뜻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세 번째가 서양철학에 관한 책이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왜냐하면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위의 두 불교철학 책들은 사실 부처님만 알면 되는데... 서양철학서는 온갖 철학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 낭만주의, 실존주의,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은 이름도 어렵고, 근현대철학자들도 니체, 헤겔, 카뮈, 샤르트르 같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OO주의 철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자 바로 뒤죽박죽 되어 버린다. 원래 역사를 싫어했는데 중학교 국사선생님 영향이 크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것은 선긋기뿐이었다. 교과서를 읽다가 선생님이 밑줄 치라고 하면, 자로 반듯하게 선을 긋는 것뿐이었다. 선도 자로 안 그으면 손바닥을 맞았다. 선생님은 밑줄 긋기를 시키다가 한 번씩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면 '이거는 설명이 좀 필요하지'라면서 운을 띄었다. 수업시간이 일주일에 두 번이었나 세 번이었나 그랬는데, 설명은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였다. 그래서 연도외우고 사건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지금도 수능 때까지 공부한 국사, 세계사는 뒤죽박죽이다. 암기과목이었으니까... 그래서 철학책에 OO주의 철학자 OOO이 말한 "..."이라고 시작하면 일단 멈칫한다. "..."의 내용이 중요한 건데 무슨 주의 철학자 누구부터 생각하다 보니 그 뒤에 나오는 큰따옴표 뒤의 말들은 반야심경 뜻도 모르고 외운 것처럼, 팝송가사 한글로 옮겨 적은 것처럼 그냥 외워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세계철학사, 서양철학사를 읽고 있다. 세계철학사도, 읽던 중에 중국철학 얘기에서 포기했다. 공자, 맹자... 당연하게 아는 이름인데 머리가 또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철학사 공부를 해야 철학서들을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쉬워 보이는 책으로 바꿔서 대출을 해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단추를 다 풀어야 한다. 아니 그냥 훌렁 벗고 새 셔츠를 입어야 한다. 이번에는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로 다시 시작이다.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다 배웠던 건데… 사실 고등학교 윤리 시간도 중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도 체육선생님이었나 그랬다. 역사 관련 과목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 없는가 보다. 나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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