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안 되지
그럴 수 있지
이 말은 누군가의 눈물을 멈추게 하고, 누군가의 실수를 품어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공감의 언어다.
상대방의 주파수에 동조하여 증폭시키거나, 반감을 드러내지 않고
(+)에서 (-)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그럴 수 있지’는 상황을 판단하기보다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말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유예가 있고,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위로가 되고, 때로는 방임이 되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여자들은 이 말을 자주 쓴다.
친구의 실수에도, 부모의 잔소리에도, 자기 자신의 혼란에도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감정을 정리한다.
정신연령이 높다는 말은 이런 언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여자애들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한다는 속설은,
이 공감의 언어가 자기 조절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되지
이 말은 뭔가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반감의 언어다.
상대방의 주파수에 간섭하여 방향을 틀고, 흐름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면 안 되지’는 상황을 판단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질서를 요구하는 태도다.
이 말에는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가 있고, 판단을 확정하겠다는 단호함이 있다.
그래서 이 말은 통제이고, 때로는 보호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남자들은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친구 사이에서도, 선생님에게도, 부모에게도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남자애들은 내버려 두면 개판이 된다는 말은,
이 반감의 언어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뜻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 말을 내면화하며 성장한다.
역할의 전환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런 언어를 청소년에게 쓰는 사람은 누구인가?
보통 자식에게 쓰는 말이다.
‘그럴 수 있지’라는 공감의 언어를 쓰던 여자들은
엄마가 되면서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아빠가 되면서
‘그럴 수 있지’라는 착한 역할을 하려 한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통제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남자는 ‘그러면 안 되지’를 너무 많이 듣고 자라서,
이제는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사랑의 언어
사랑의 속삭임에도 이 두 문장은 다르게 쓰인다.
남자는 사랑에 빠질 때
‘그럴 수 있지’라는 언어를 많이 쓴다.
상대의 실수도, 변덕도, 과거도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무르익을수록
‘그러면 안 되지’라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항상성이다.
여자는 이것을 사랑이 식었다고 느낀다.
양육의 시기에 습득한 ‘그러면 안 되지’의 정서는
적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의 사랑 표현법을 ‘그러면 안 되지’라는 길들임, 혹은 희생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그럴 수 있지’라는 정서는
사랑이 식었음을 느끼게 하고, 포기, 끝을 의미한다.
‘그럴 수 있지’와 ‘그러면 안 되지’ 사이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그럴 수 있지’는 공감의 언어이고,
‘그러면 안 되지’는 통제의 언어다.
여자는 공감에서 통제로,
남자는 통제에서 공감으로 이동한다.
둘 다 공통적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을 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이 언어의 교차는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의 역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아니, 애써야 한다.
당신은 오늘, 어떤 언어로 사랑을 표현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