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 VS 용역
숨겨진 갈등
행정이라는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참 많은 인간 군상을 겪었다. 진입 초부터 못 끼어들게 쌍라이트를 켜며 갑자기 속도를 올리는 차, 진입해서는 요리조리 차선을 변경하는 얌체차, 자기 하나 빨리 가보겠다고 제대로 속도도 못 내면서 1차로에 끼어들어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대형차, 사고가 나기를 기다리며 하이에나처럼 갓 길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렉커차...
어쨌든 갈등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싸우고 버티면서 교통정리를 해나갔다. 쉽지 않았다. 이제 좀 교통정리가 되는가 싶으면 바로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사건, 새로운 갈등이 불쑥불쑥 끼어들었다. 여기에 굵직굵직한 사건만 써서 그렇지 자잘한 것 하나하나 다 나열하자면 몇 박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 아! 이 잠깐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신을 못 차리겠다. 돌이켜보면 그 안에서 3개월이라도 버틴 게 대단하다.
그러데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부분은 명확하지 않은 뭔가... 뭔가 오묘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었다. 위화감? 그래 위화감이라고 하자. 정리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이 기분은 위화감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3개월 차에 접어들어 '반부패 청렴교육'이라는 승진자와 신규임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참석했다가 의도치 않게 남의 얘기를 엿들으며 정체를 알았다.
그렇다. '용역'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무원들은 자신의 역할을 민간 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으로 한정 짓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게 자기 업무의 전부인양...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위험의 외주화'. 딱 이거 아닌가? 아니면 앞서 얘기했던 전 회사의 안전관리담당자와 똑같은 생각. 이들은 정책을 개발하면 (사실 정책 '개발'이라기보다는 '모방'이 더 맞는 말이다. 벤치마킹이라는 용어로 포장하지만, '따라 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죽하면 홍석천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천편일률적인 지방 관광지 개발을 꼬집었을까) 그 실행은 외부 민간에 '용역'을 줘버리는 거다. 즉 권한만 갖고 책임은 외주를 줘버리는 거다.
그들은 할 줄 아는 게 없다.
소집장소인 강당에 앉아있는데, 교육을 받으러 온, 승진자로 추정된다, 공무원들이 친한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제는 자기 업무의 힘든 점을 토로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 한 명이 이런 말로 운을 띄었다.
"아~ 같은 용역 한 세네 번 뺑뺑이 돌리면 되는데... 요즘 그걸 못하게 해서 힘들어 죽겠어."
그리고 곧이어 이런 맞장구로 대화가 이어졌다.
"맞아! 맞아! 쉬운 일을 어렵게 한다니까?"
'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공무와 사무의 차이인 걸까?'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건 그냥 일을 안 하겠다는 소리잖아?'
잠시 후 이들의 대화는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니까 우리가 민간에 용역을 많이 줘야 돈이 풀리고, 여러 사람이 먹고 살 텐데... 안 그래?"
"맞아! 맞아!"
'이런 젠장'
속으로 욕이 나왔다.
'여태까지 내가 낸 세금으로 이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제야 정체를 알 수 없던 위화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이들은 '자기 계발'이라는 명분으로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교육도 가고, 연수도 가고, 출장도 가는 사람들 아니던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런데 결론은 '용역'이었다. 그들은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이러니 정년퇴직하고 사기당해서 쫄딱 망하는 거지. 돈으로 시키기만 했으니 그들에게는 프랜차이즈가 딱 제격이었던 거다.
1억의 결론
이제 내가 맡았던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이번 양평고속도로 비리와 요즘 부동산 정책으로 시끄러운 뉴스를 보면서, 그동안에는 <TO-BE가 어떻게 되는지>를, 음... 그러니까 이 정책과 정치인이 앞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어떤 미래를 그리겠다는 건지에 방점을 두고 봐왔다면, 이제는 공직에 조금 몸 담아봤다고... 그들의 습성을 좀 알았다고... 왜 그런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결론을 냈는지에 대해 더 방점을 두고 보게 되었다.
즉,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선동 정치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 정치에 발을 들였다고 멋 부려 써본다. 내가 임용되기 전부터 '농가조직화'라는 목표로 용역이 진행 중이었다. 담당자가 나인데, 인수인계는 두 달이 넘어서 받게 되었다. 그동안 내 업무인지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용역의 검수 담당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와 갈등을 겪었던 어공의 업무 스타일이 이런 식이다. 콧김 좀 뿜을 수 있는 일이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업적으로 삼을 만한 업무면, 담당자는 쏙 빼고, 자기가 2층 늘공들과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귀찮은 실무를 처리할 때가 되거나 책임이 주어지는 기안을 해야 할 때면, 담당자가 당신이라며 떠넘긴다. 그동안 다른 팀원들은 그런 어공이 낸 펑크를 메꿔줬나 본데, 나한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 난 당신이 하던 일 끝까지 책임지고 하라며 못한다고 한 소리 해버린다. 어쨌든 이 용역이 빌런 어공에게서 내게로 넘어온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다.
과업지시서와 우선협상자료를 보면서 업무를 파악했다. 이런저런 사진과 조감도, 그리고 현 상황 분석으로 채워졌지만, 결론은 3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아휴~ 이런 서류를 뭐 한두 번 봤어야지. 전 회사에서도 같은 류의 컨설턴트들은 전부 사기꾼이었다. 그들은 말만 뻔지르르할 뿐 알맹이는 없었다. 계약 전까지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면서 공수표를 남발하지만, 일단 계약을 맺고 나면 이런저런 안 될 이유들만 들어가며 피해 가기 바빴다. 이런 애들은 꼭 간부 소개로 온 애들이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10월 말이면 일정이 종료되는 용역이었다. 거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결과물이 도출되는지를 점검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용의 충실도나 실질적 성과를 따질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쓴소리는 안 하고, 얼굴 붉히지 않게 진행했다. 다만 내 경력이 약하니, 전문가 집단이라고 자칭하는 그들의 노하우를 최대한 많이 뽑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상냥하게 말하고, 살살 구슬렸다. 영업사원 시절의 스킬들이 빛을 발했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고, 이런저런 속마음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고 나서, 월정례회의 말미에 'off the record'라고 하고 솔직하게 물어봤다. 사실 용역업체에서 보내온 엑셀자료와 그들이 사용한다는, 공공급식팀장이 칭찬해 마지않던, 그래서 자랑스럽게 비싼 돈을 주고 사 왔다며 자랑해 마지않던 운영 프로그램은 실망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생산관리자로 ERP를 운용하는데 잔뼈가 굵은 내 눈에는 유치원 장난 수준이었다.
그래서 용업업체에게, 관리 노하우라며 보내온 엑셀자료와 운영 프로그램이 영 시원치 않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리고 솔직히 '농가조직화'를 잘하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1억짜리 용역이었다. 과업지시서에 기재된 결과물로는 도저히 '농가조직화'를 잘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움이 될만한 결과물도 아니었다. 이것도 공공급식팀장은 자신과 전임자가 밤을 새워가면 작성한 과업지시서라고 했다. 그런데 결론은 아니올시다 같았다. 그래서 이 정도는 솔직하게 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대답은 이랬다.
"담당자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그는 열정페이를 말하고 있었다.
용역은 책임을 맡지 않는다. 결과만 낸다. 공무원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시만 한다. 어공은 책임을 진다. 그러나 권한은 없다. 총알받이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구조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균열은 생긴다. 불행한 점은 그 균열이 생기기 전에 사업이 끝난다. 이건 거의 국정감사감이다.
지금부터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이다. 이미 사업 기한은 올해까지였다. 그리고 내년 말로 연장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아무 성과 없이 사업을 끝내면, 현 지자체장의 차기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선거 이후로 사업종료를 미룬 것은 아닐는지...
아~ 퇴사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