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걸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라니...
역방향
남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직하고, 연봉을 올리고, 자아실현을 향해 달린다는데, 내 인생은 좀 남달랐다. 특이하게 제약영업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가장 연봉이 높았다. 생명공학박사를 꿈꾸며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던 데다, 망상과 공상을 좋아하는 다소 고지식하고 외골수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 당시엔 보이는 기회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그만큼 어렸다. 어리석었던 만큼 순수했다.
다행히 운은 좋았는지 성과는 괜찮았다. 거짓이 난무하고 자기 이속 챙기기에 바쁜 냉혹한 곳이었지만, 그런 곳에서도 진실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일한 것이 도리어 빛을 봤다고 할까. 좋게 봐주시는 팬층이 생겼고, 점점 성장할 수 있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내디딘 곳, 그 어디보다 어렵다고 하는 곳에서 이제는 뭔가를 도모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한마디로 성격을 개조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높은 연봉은 찍었지만, 상사의 언어폭력, 동료의 질투,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 지향적인 조직문화에 숨이 막혀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다음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조직을 찾아 들어갔다. 연봉은 30% 넘게 줄었지만, 그래도 큰 조직 안에서 느껴볼 수 있는 안정감이 뭔지 궁금했다. 전 직장에서 배운 사람 다루는 기술을 바탕으로 역시나 운 좋게 점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안정감은 너무나 달콤해서 30대의 전부를 이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역시 성장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유지·보수해야 하는지, 특히나 마지막에는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까지... 오랜 기간 근무한 만큼 고민했고, 개선하고 성과를 냈다.
하지만 상사 하나 바뀌면 분위기가 뒤집히는 사내정치는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싫은 사람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어느새 나도 꼰대 갑질 상사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렀고, 인생은 후반전에 접어들어 있었다. 이대로 내가 가장 싫어하던 모습으로 끝나긴 싫었다.
나 같은 인생도 있는 거지...
그동안 뭘 해놨는지 살펴봤다. 아껴 쓰면 일 안 해도 먹고살 순 있을 것 같았다. 연금수급시기까지 잘 버티면 솔로로 노후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히 백수의 길에 발을 들였다. 그러다가 여차저차 어공이 되었다. 그런데 이 어공 자리,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능력을 요구했다. 와, 내가 여기서 이거 하려고 여태까지 일을 해왔나 싶을 정도로 삶의 총합을 쏟아부어야 했다. 역대급 책임감을 요구하는 곳이었지만 역대급 박봉이었다. 좀 잘 사는 대학생 한 달 용돈 정도? 과외를 해도 이보다는 더 벌었겠다.
항상 불만을 품고 터전을 옮겼던 내가, 불만을 품은 이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젠 내가 그들의 불만을 받아 적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제는 불만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불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안다.
이걸 타파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나를 갈아 넣으면 된다. 하지만 뭘 위해서? 이젠 더 이상 어리지 않다. 늙은 만큼 약삭빠르고 이해타산이 빨라졌다. 돌려 말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연륜(용기)도 생겼다. 안될 걸 붙잡고 될 때까지 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것은 그냥 두지 않는다. 반드시 고쳐놓는다. 고쳐지지 않더라도 시도는 해본다. 그래야 치우침이 발생하지 않는다. 살아보니 치우침이 발생하지 않게 방향성을 없애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Now I know who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