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도 나를 묻고 있구나 (5)
To. 까마귀 노는 곳에 태어난 불행한 백로라고 믿던 나
너는 언제나 네가 제일 잘났다고 믿었지. 작은 성취에도 스스로 도취했고, 남의 칭찬은 곧 존재의 증거처럼 삼켰지. 그러나 그 잘난 맛은 결국 너를 고립시켰어. 선생님의 눈에 띄고 싶다는 욕망으로 교실에서 손을 들 때마다 정답을 말해야 한다고 믿으며 때로는 오답조차 자신감으로 포장해 내뱉곤 했었지. 그래서 커갈수록 점점 선생님의 작은 실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꼬장꼬장한 아이가 되어갔었어.
그래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겪지 않은 일을 겪어본 것처럼 꾸며내며 친구들에게 거짓말도 참 많이 했었다. 그 잘난 맛은 너를 더 외롭게 만들었고, 타인의 목소리를 안 듣게 했고, 겸손을 잃어버린 채 자위하듯 살아가게 만들었지. 외로움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주겠다며 세상과 맞서려 했던 날들도 있었다. 대학 강의 시간에 교수님과 언쟁을 벌였을 때, 서둘러 강의 마치시는 교수님을 보며 당시에는 후련하고 대단한 영웅이라도 된 듯싶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넌 다른 많은 학우들의 시간을 망쳐버린 거야.
하지만 부끄러워하지는 말자. 스스로를 귀족이라 여기며, 양반가문의 자긍심을 끝내 놓지 않았던 지난날. 그 잘난 맛 덕분에 너는 도전했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섰으니까. 자기 확신은 때로는 오만이었지만, 때로는 너를 지탱해 준 힘이기도 했다.
잘난 맛은 결국 혼자만의 연극이었다. 그러나 무대 아래에서 웃어주는 얼굴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그 연극이 삶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안다. 잘난 맛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웃음과 함께할 때 더 빛난다는 것을.
너의 성취가 누군가의 기쁨이 될 때, 그 잘난 맛은 오만이 아니라 사랑이 된다. 오만은 나를 고립시켰지만, 사랑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었다. 이제 나는 그 다리를 건너고 있어. 다리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우린 꼭 다시 만날 운명이니까.
From. 신라 혁거세의 후손, 밀양 박 씨 행상공파 도련님 아니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