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내가 나를 보는 방식 (자기 인식) (9)
SNS 속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밝은 미소, 화려한 배경, 완벽한 구도. 그러나 그것은 순간을 포착한 편집본일 뿐이다. 방송에서 우연을 가장한 설정들이 교묘한 편집을 거쳐 전국으로 송출되던 시절, 그것은 소수의 ‘방송쟁이’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제는 개인화되어 SNS와 유튜브로 퍼져나갔다.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SNS 속의 행복도 연출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들은 언제나 비판적이다. 아니, ‘언제나’를 찾아들었는지도 모른다.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고약한 심보다.
SNS로 나를 설명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같은 증세를 겪는다. “왜 나는 '저들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비교는 설명의 시작이자, 동시에 설명의 함정이다. 남의 행복을 설명하는 순간, 나의 불행이 증명되는 듯 보인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키려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앞세우는 마케팅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의 유혹이다. 그들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편집된 영상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대중들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용한다. 저들처럼 되고 싶다. 혹은 저들이 가진 것을 못 가지면 나는 뒤떨어진다. 이 불안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팔로워가 아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정반합의 논리로 보면, 긍정과 부정이 치열하게 싸운 끝에 중간 어딘가에서 합이 도출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합의는 중간이 아니라, 다수가 쏠린 방향에서 압도적으로 결정된다. 내 안의 모순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것들이 싸우고, 때로는 한쪽이 이겨버린다. 중용은 이상일뿐, 실제의 나는 언제나 치우쳐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설명될 수 없다. 설명은 언제나 편집된 나를 드러낼 뿐이다.
사진 속의 나는 이미 과거의 내가 되어 있다. 설명된 나는 설명되지 않은 나를 배제한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나로 남는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살아 있다. 설명되지 않는 나야말로 진짜 나다. 나는 언어 바깥에서, 설명의 경계 너머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설명되지 않는 나,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