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의 세계 ≠ 음흉한 세계
결국 사람의 수만큼 목적이 있다. 무슨 모임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학교를 다니든, 스터디를 하든, 친구를 만나든, 같이 식사를 하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있는 사람만큼 목적이 있다. 방향이 같고, 목적지가 같았을 뿐이지 왜 그 방향을 향하고, 그곳으로 가는지의 이유는 전부 다르다. 문제는 그것을 숨기는 것이다. 어른의 세계는 이렇게 자신의 목적을 숨기고 같은 방향, 같은 곳으로 향하는 음흉한 세계이다. 그래서 다 같이 가지 못한다. 점점 끝에 다다를수록 '이 길이 아닌가 봐'하는 이탈자가 속출한다. 똑같은 목적을 갖고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은 장소로 가고자 했다면 차례대로 줄을 서서 가면 될 일이다. 1등으로 도착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이미 도착해서 김샜다고 이탈하는 사람, 가다 보니 더 좋은 곳이 보여서 방향을 트는 사람, 또 그걸 따라가는 사람, 혼자만 가겠다고 옆사람들 넘어뜨리는 사람. 온갖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은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같이 놀라고... 정작 어른의 세계는 그렇지 못하면서... 진짜 '누가 누굴 가르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도 똑같다. 팀원들이나 후배사원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소리를 내 선배 사원들과 똑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기분 나빠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후배사원들에게 예의 없고 건방지다고 한다.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는 둥,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다는 둥... '선의'도 대물림되지만, '악의'는 더 길게 대물림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도 내 나이 돼봐라', '너도 부모 돼봐라', '너도 승진해 봐라' 등등으로 자기합리화한다. 우리가 딱 끊어내지 못하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면서... 품질관리의 시대, 6 시그마의 시대, 도요타생산방식(TPS)의 시대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솎아내야 하는 시대였다. 이 시대가 지고 있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시대가 오고 있다. 동상이몽의 세계는 생존본능일 것이다. 모두 한 곳으로 가다가 잘못된 길이면 몰살당하는 것이니, 변이를 하나씩 심어놔야 혹시나 모를 몰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변이는 희생양이 되거나 선구자가 되겠지? 단지 반복만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