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같은 피부는 타고나야 하던데…

타고나는 거 1% 노력 99%

by 철없는박영감

부럽다. 도자기 같은 피부. 우연히 길을 지나다 유독 하얗고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사람과 마주쳤다. 잠깐 스쳐 지났을 뿐인데 뇌리에 박힌다. 군중 속에서 혼자만 빛이 난다. 후광이라고 하나? 신이 강림하면 저런 형상일까? 주변을 순식간에 오징어 풍어장으로 만든다.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하겠다. 현미경으로 봐도 모공이 안 보일 것 같다. 나도 어디 가서 피부 좋다는 소리 좀 듣고 다녔는데 감히 들이댈 수 없는 수준의 피부다. 그런 칭찬을 안 듣고 살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을 텐데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으레 듣는 칭찬이 피부가 참 좋다는 얘기였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더 쓰여 남자 치고는 화장품도 많이 바르고 나름대로의 스킨케어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백조가 헤엄치듯이, 티 나면 창피하니까 '꾸안꾸'로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물 많이 마시고, 피부에 좋은 것만 찾아먹고, 태양은 당연히 피해 다녔다. 그래서 피부 부심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기를 죽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마어마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심에 돈이 많이 들어도 피부관리실을 다니고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러다 결국 병원으로 가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해도 타고난 사람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노력으로 살을 빼고, 운동으로 근육질의 몸매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처럼 안 좋은 피부를 노력과 관리로 좋은 피부로 바꾸겠다는 꿈을 꾸지만 타고난 좋은 피부를 잘 관리해서 동안을 유지한다는 정도의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피부만큼은 유전자의 힘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결국은 99%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고나는 1%의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 같다. TV속의 아이돌들도 클로즈업하면 여기저기 피부트러블이 보인다. 1%는 욕심이겠지?


그 1% 욕심 때문에 그루밍족 시절에는 일단 손을 깨끗이 씻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토너를 화장솜에 묻혀서 결대로 정리해 준 다음, 수분 로션, 에센스 발라서 피분에 흡수시키고 그다음에 크림을 바르고 쿨링 기구로 얼굴에 열을 뺀 다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머리 스타일링을 하고 나서 프라이머로 모공 가리고, 파운데이션 발라서 베이스를 깔고, 잠시 샐러드와 클렌즈 주스로 배를 채우고 와서 컨실러로 다시 정리하고, 마스크에 묻어나면 창피하니까 파우더를 살짝 얹고, 펜슬로 눈썹 좀 메꾸고 섀딩으로 콧대 좀 높여주고 턱도 좀 깎아주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와서는 그 늦은 시간에 클렌징 오일로 화장품 녹여내고, 약산성 폼 클렌징으로 2차 세안하고, 다시 토너로 정리하고,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고현정 누나가 사용한다는 콜라겐 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마사지해 줬다. 그래서 고현정 누님은 나를 도자기 피부의 길로 인도하는 메시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항상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홈쇼핑의 스킨케어 제품은 모조리 사모았다. 하지만 모공과 피지는 항상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나 나이 들면 다 꽝인데... 1% 욕심 채우려다가 기둥뿌리 뽑히겠는데... 저렇게 살려면 아침에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야근하다가 새벽에 퇴근해서 관리한다고 더 늦게 자고, 더 일찍 일어나고... 피부에는 잠이 보약이라는데... 헛짓거리도 이런 상 헛짓거리가 없었다.


지금은 밤 9시 전에 잠들고,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유산균과 콜라겐을 먹고 오늘은 뭘 써볼까 생각하다가 5~6시 정도 되면 브런치에 접속한다. 피부는 당연히 더 좋아졌다. 그루밍 때 샀던 화장품들은 화장대에서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다. 다 갖다 버려야 하는데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화장대 위를 장식하고 있다. 괴롭히던 모공과 피지도, 물론 아직도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는다. 지금은 일어나서 세수하고 면도하고 토너, 보습 크림으로 끝이다. 훨씬 간결하고 스트레스 덜 받고 힘들지도 않다. 피부는 더 좋다. TV를 틀 때마다 홈쇼핑 채널부터 쫙 훑었는데 지금은 몇 번 채널에서 방송하는지도 모르겠다. 1%의 욕심을 버리니 99%의 노력을 50%로 줄여도 효과는 200%다. 도자기 같은 피부, 식스팩 다 욕심이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상술이다. 마케팅 전문가들 일자리 없어질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케팅 전략 때문에 내가 그 고생을 한 거다라고 핑계를 대면 안 되겠지? 마케팅 전략에 넘어간 내 마음속에 욕심이 문제다. 이러면서 명상을 한다고 요가매트를 사고 운동복을 사고 앉았다. 아~ 구제불능! 내 피부를 칭찬했던 처음 만난 사람들도 문제다. 어설프게 좋은 피부를 피부 참 좋다고 과장해서 칭찬을 하니 내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탓을 하면 안 되겠지?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분위기 좋자고 한 말에 목숨 건 내 낮은 자존감이 문제다. 책을 읽고 생각을 많이 하니 조금 알겠다. 타고나야 할 1%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해온 99%의 노력을 기억하자고 생각하며 아침 산책을 나선다. 그 피부 좋은 사람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피부만 좋았지 나보다 키도 작고 얼굴도 컸던 거 같다. 성격이 더러운지 또 누가 알까… 내가 그 사람의 1%를 부러워한 것일 수도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만 잘 들어도 자다가 떡이 생기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