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랑은 아무 상관없잖아
44년간 선택해 온 결과로 지금의 내가 있다. 어젯밤도 9시에 잘까 하다가 유튜브에서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을 보다가 '조금 더 보고 10시에 자자.'라고 선택하고 11시에 잤다. 다행히 10편으로 끝나서 밤새워 볼 일은 없었다. 늦게 잔 덕분에 오늘 아침은 8시에 일어났다. 매일 저녁 7~8시에 잠들어서 새벽 3~4시에 일어나다가, 이렇게 눈부신 햇빛에 잠을 깨어보니, 기분이 색다르고, 더 상쾌한 것 같기도 하다. 공기도 맑은 것 같고, 기온도 딱 적당히 시원하다. 아침식사로 닭가슴살과 오이를 빼고 평소와 조금 다르게 사과 한 개, 우유 한 컵, 견과류 조금을 먹고 나서 아침 산책을 다녀올까 하다가 라디오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을 튼다. 그렇게 한 시간을 듣고 나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도 안 돼서 이렇게 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런 선택의 기준들이 좌우명이나 생활패턴, 성격, 개성... 이런 것들로 표현되는 것 같다.
거짓말을 하거나, 뭔가 규칙에 어긋난 일을 하면 항상 들켰다. 다른 친구들은 천연덕스럽게 잘 넘어가던데 내가 하면 꼭 들통났다. 덩달아 같이 있던 친구들도 걸려서 나랑 같이 있을 때는 모두가 바른생활사나이가 되었다. 수업시간에 짝꿍은 계속 졸고 아예 엎드려서 자는데도 괜찮은데 나는 눈만 살짝 감아도 바로 분필이 날아왔다. 내가 눈에 잘 뜨이나? 군에서 당직을 설 때도 다른 사람들은 술도 마시고, 딴짓도 하고, 컴퓨터 게임도 했는데, 잘 넘어갔다. 나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들통나는 인생을 알기에 꾹꾹 참았는데, 어쩌다 한번 일탈을 하면 바로 들켰다. 당직실 구석에 숨어서 잠깐 영화 좀 보고 있었는데, 애가 사라졌다고 당직 부사관이 호출되어 오고, 담당관이 호출되어 오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항상 준법, 준수가 기준이다. 인생이 좀 재미없고 고리타분해져도 그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하라는 대로 하는 게... '괜히 남들한테 피해 주는 것보다 내가 조금 재미없고 말지 뭐...' 이런 생각이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한 연예인들도 술이 들어가니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들도 그들이 선택한 결과로 거기에 있었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관리한다고 먹고 싶어도 못 먹고, 술도 마시고 놀고 싶지만 꾹 참고 팬들을 위해 본인들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었다. 팬들의 사랑이 최고의 행복이라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30년 가까이 살아왔으니, 본인의 본모습을 살짝 보여도 되는, 약간의 고삐가 풀릴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저렇게 행복해하지... 물론 조금 삐딱하게 생각하면 연출된 모습에 내가 혹한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술취하기 전의 출연자들보다 프로그램이 지난 후 술에 약간 취한 출연자들의 모습이 훨씬 행복해 보인 것은 확실하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하지만, 과연 그 선택들이 행복한 것과 상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선택은 책임감을 낳고, 어떤 선택은 재앙을 낳기도 한다. 어떤 선택은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나한테만 영향을 주지 않는 '나비효과'로 돌아올 수 있다. 결정장애? 그런 신중함이 어쩌면 인류애일 수도 있고, 결단력? 그런 섣부름이 나락에 떨어트릴 수도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들은 정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공리주의를 따를 수도 없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더 정답이 아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인생이 B와 D사이의 C인 것은 맞지만, 행복이랑은 아무 상관없다. 나는 어떤 선택의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